[공연] 제12회 서울 변방연극제

지금까지 변방이라는 말은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부 혹은 비주류라는 의미로 사용돼 왔다. 그러나 주류-비주류라는 경계 짓기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예술인들이 있다. 새로운 무대 미학을 추구하며 사회에 대한 비판적 물음을 던지는 ‘서울 변방연극제’의 예술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지난 2일(목) 시작돼 오는 19일(일)까지 대학로와 명동, 남산 등지에서 펼쳐지는 제 12회 ‘서울 변방연극제’는 ‘도시기계: 요술환등과 산책자의 영리한 모험’이라는 주제로 신진 예술가들의 날카로운 문제작들을 제시한다. 총 13편의 실험극은 주류 연극들이 답습해 온 천편일률적 형식과 부재한 문제의식을 비판하며 실험적 연극을 선보인다.

극단 ‘언더 더 브릿지’의 「오복동 행복관광」은 연극에 ‘관광’이라는 상황 설정을 도입한 실험극이다. 오는 10일(금)부터 11일(토)까지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열리는 이 공연은 미리 관객들에게 공연장 외부의 특정 장소에 모일 것을 공지한다. 이곳에 모인 관객은 단체 관광객이 돼 이상세계 ‘오복동’으로 분한 공연장으로 이동한다. 관객들은 객석이 따로 없는 공연장에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닮은 아름다운 이상세계를 만난다. 그러나 곧 관객을 가장하고 들어온 두세 명의 배우들이 오복동의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내면서 이상 세계에 대한 인간의 갈망과 환상은 이내 그 허상을 드러낸다.

한편 연극제에는 사회 현안의 문제를 제기하는 현실 참여적 연극 역시 준비됐다. 10명의 이주노동자가 숨진 2007년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사건에 대한 기억과 진실을 다룬 창작집단 샐러드의 「여수, 처음 중간 끝」은 이번 연극제의 대표적 현실참여극이다. 오는 5일(일)과 6일(월)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열리는 이 연극은 화재 참사와 관련해 이주노동자들이 경험한 부조리를 다루며 여전히 베일에 가린 여수화재참사 사건의 의혹을 파헤친다. 당시 생존자들을 포함한 외국인 노동자 출신 배우들이 직접 무대에 오르고 극단에서 보관하고 있던 화재사건과 관련된 100여개의 영상자료들도 공개된다.

▲ 창작집단 샐러드, 「여수. 처음 중간 끝」, 2010

18일(토), 19일(일)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펼쳐지는 극단 그린피그의 「의붓 기억-억압된 것의 귀환」 역시 전쟁이라는 사회적 폭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극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전쟁의 기억을 안은 채 살아온 생존자들의 삶을 돌아본다. 극 속에 전쟁의 증언이 담긴 미술, 음악, 영상 등을 들여와 역사, 그리고 사회로부터 억압받아 온 개인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연극은 전쟁의 기억에 신음하는 개인을 돌아보지 않는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연극제의 총 예술 감독을 맡은 임인자 감독은 “지금까지의 변방연극제가 형식적 실험에만 집중했다면 이번엔 동시대성에 주목한 연극을 통해 사회적 의미들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주류의 연극제작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무대 위에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금의 문제를 사유하는 그들. 이들과 함께 우리 주변에 산적한 삶의 문제들을 돌아보는 산책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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