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국제비교문학대회 ‘비교문학의 영역을 확장하기’비교문학 세계화 방안, 문명 전환의 시대에 문학의 역할 등 논의학과중심주의, 민족주의 등 중심주의로 문학의 보편성이 왜곡돼선 안 돼

 

박상진 교수
부산외대 이탈리어과

국제비교문학회는 지난 1954년에 창설된 이래 지금까지 3년마다 한번씩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8월 중앙대에서 열린 대회의 주제는 ‘비교문학의 영역을 확장하기’로서, 비교문학을 세계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하이퍼텍스트 시대에서 문학의 새로운 역할을 논의하며, 자연과 기술, 인성이 서로 다른 전통들 속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뤘는지 추적하고, 차이를 번역함으로써 세계를 연결한다는 것과 대립과 타자성을 문학적으로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묻고, 변화하는 비교 패러다임 속에서 아시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등 여섯 가지의 하위 주제로 이뤄졌다. 이러한 주제들은 급변하는 문명적 전환의 시대에서 문학이 다른 문화 영역들과 더불어 수행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전 지구적 차원에서 모색하고자 적절하게 짜였다.

국내외 지성인 모인 지적 향연

약 700명에 이르는 세계 각지의 문학연구자들은 이에 부응해 다양한 세부 주제들로 발표를 신청했고 한국 조직위원회는 이들을 적절한 범주로 구분해 여러 세션들로 배치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맥락에서 출발한 수많은 다양한 담론들이 공존하면서 교차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담론들이 형성되는 거대한 지적 향연이 마련됐다. 이들을 더욱 보편적인 영감으로 이끈 것은 여섯개의 특별 강연이었다. 국내에서는 이어령, 황석영, 그리고 이문열과 같은 지성인들이, 국외에서는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헤르타 뮐러를 비롯해 압둘 잔모하메드와 자스비르 자인과 같은 탈식민주의 담론을 펼치는 이론가들이 고무적인 강연을 수행했다.

헤르타 뮐러는 자신의 유년 시절의 경험을 잔잔하게 풀어냈다. 나치즘 치하에서 소녀의 눈으로 본 주변 사람과 사물이 어떻게 뒤틀려 있었는지, 즉각적인 사고만을 허용했던 독재의 상황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오랜 기간 지속된 생각을 통해 뮐러는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었다. 뮐러가 말한 심문의 경험은 5,60년대의 한국 문학에서도 다뤄진 것이지만 뮐러는 그러한 특수한 경험을 모두가 공유하게 하는 힘을 보여주었다. 그 보편화의 힘은 단지 특권적 언어와 정전 작가로서의 권위보다는 깊고 멀리 나아가는 사고를 통해 형성됐다. 그 가운데 뮐러 자신의 내밀한 개인 경험은 주변 풍경과 사물에 스며들었고 그 언어는 그곳에 모인 각기 다른 경험들을 지닌 사람들을 매료시킬 정도로 잔잔하고 세밀하면서도 강렬했다.

한편 인도에서 온 자스비르 자인 교수는 비교문학이 아직도 보수적인 분위기에 사로잡혀있다면 그것은 아시아 비교문학이 발달하지 못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 치유를 위해 자인은 대위법적 서술을 제시했다. 텍스트를 대화의 거점으로 만들고 작가와 독자가 각각 대항담론들을 창출하여 문학을 정치적인 저항의 과정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실천한 혹은 실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수많은 텍스트들을 예시하면서 자인은 텍스트의 민주화보다는 텍스트에 대한 접근의 민주화를 강조했다. 이는 아직도 서구 중심으로 이뤄졌던 비교문학에 전혀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스페셜 포럼에서 한국문학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기획은 국제비교문학대회가 어디서 열리든지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맥락을 보편적 차원에서 공유하며 함께 생각하던 전례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올해 한국의 경우는 더욱 특별했다. 올해가 한일병합 100주년, 해방 65주년, 한국전쟁 발발 60주년, 광주항쟁 30주년과 같은 역사의 굽이들을 기억하게 하는 해인 만큼, 스페셜 포럼 위원회는 그들을 조명할 수 있는 주제들을 선별하고 발표하게 함으로써 한국의 복잡한 근대화의 풍경들을 전 지구적으로 공유시키고자 했다.

특수와 보편 관계 모색으로 한국문학의 자리 재배치해야

한국비교문학회는 이번 대회를 유치하면서 비교문학의 제도적인 발전을 도모하고자 했는데 이는 특히 교육 측면에서 강조됐다. 국내에는 여섯 개 대학의 대학원에 비교문학 석박사 과정이 있으나 한곳만 제외한 나머지는 협동과정이며, 학부에서부터 시작하는 독립된 학과는 아직까지 어디에도 설치되지 않은 형편이다. 국민문학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방식으로 문학과 문화에 접근할 필요는 공감하되, 그 공감은 학과 사이의 장벽이 높은 우리의 학계에서 현실화되기에는 아직 확실한 계기를 맞지 못하고 있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보편적이다. 다만 문학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보편적인 사고와 정서를 펼쳐내지 못하기에 문학의 보편성은 언제나 제한되거나 왜곡됐다. 문학의 보편성이 제한되고 왜곡되는 양상은 대개 중심주의 때문이다. 민족주의와 그것이 기형화된 제국주의(위에서 말한 학과중심주의도 이들에 닿아있다)는 대표적인 중심주의들로서, 그들이 동반하는 문학은 그들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이념을 가리거나 치장하는 데 동원됐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저항을 의식하는 것 또한 문학의 역할이다.

예로, 한국문학은 다른 비서구 문학들이 대개 그러하듯 세계문학의 차원에서 소외돼왔지만 한국문학의 자리를 상상하는 일은 중심주의를 넘어 문학의 보편성을 다시 세우는 데 퍽 요긴하다. 세계문학이 과연 무엇인지 묻고 특수와 보편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가운데 한국문학의 자리를 재배치함으로써 이른바 주변부 문학을 탈중심화하는 작업은 문학의 정체성의 끊임없는 천착을 추동시킨다. 그것은 한국문학의 문학가치를 재조명하는데 그치지 않으며, 문학의 전 지구적 민주화라는 거대한 문명적 전환에 직결된 사항이다. 국민국가의 경계나 문학과 타 영역들 사이의 경계를 뛰어넘는 비교문학은 바로 그러한 큰 기획을 추진하는 최전선에 서있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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