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 새로 나온 책]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크레이그 실비 지음┃문세원 옮김┃양철북┃
504쪽┃1만4천원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자들의 위장전입, 탈세 의혹 등이 불거지며 공직자의 도덕성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청문회를 지켜보는 이들은 속속 밝혀지는 거짓과 위선에 실망감과 분노를 감출 수 없다. 이처럼 사회의 추악한 위선, 혹은 자신에게 내재한 욕망에 직면할 때면 누구나 당혹감과 갈등을 느끼기 마련이다. 두 소설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와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은 각각 조용한 마을의 살인사건과 심리치료과정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위선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호주의 젊은 작가 크레이그 실비는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에서 마을 어른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폭로하는 소외된 소년들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이면에 집중했다. 똑똑하지만 허약해 ‘은따’인 찰리, 술주정뱅이 홀아버지와 사는 문제아 재스퍼, 그리고 베트콩이라 놀림 받는 베트남 소년 제프리는 어느 날 재스퍼가 발견한 소녀의 시체를 보고 함께 살인자를 찾아 나선다. 이들이 의문의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의 위선적 실체가 드러난다. 마을 아이들은 가정환경이 열악하거나 인종이 다른 찰리 일행에 폭력을 가하고, 사건의 진실을 숨기는 듯한 어른들은 재스퍼를 소녀의 살인범으로 몰아간다. 평온했던 마을이 한 꺼풀씩 위선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을 지켜보며 찰리는 ‘삼십억이나 되는 사람을 전부 외롭게 만드는 세상’이라며 절망한다.

소년들이 핍박에 굴하지 않고 진실을 찾아 분투하는 모습은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 남부의 코네티컷 주가 배경인 명작 『앵무새 죽이기』를 연상시킨다. 정의로운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가 살인 누명을 쓴 흑인을 변호해 구해내듯이 찰리는 마을 사람들의 은폐와 협박에 맞서 ‘애티커스 핀치 식’ 사고로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 『앵무새 죽이기』의 오마주로 불리는 이 소설 속에서 소년들은 더이상 사건의 주변 인물이 아니라 해결의 주체이기에 고전적 명작에서 한 걸음 나아간다.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에서 위선에 찬 어른들이 진실을 숨기려고 소년을 핍박한 반면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의 주인공은 심리치료를 통해 자신의 위선을 깨닫고 도덕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다. 남미 출신의 저자 아리엘 도르프만은 10여년간 칠레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 피노체트 군부의 권력장악을 비판해왔다. 그는 소설에서도 지나친 권력욕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기업인의 욕망과 도덕성의 줄타기를 긴장감 있게 그려냈다.

마케팅 회사의 CEO인 블레이크는 회사에 잇단 위기가 닥치자 고민에 빠진다. 구조조정을 보류해 직원들과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도덕적 강박과 구조조정으로 손실을 막아야 한다는 기업인으로서의 욕망 사이에서 고민하다 불면증을 겪는 그에게 정신과 의사가 독특하고 섬뜩한 심리치료법을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한 여성의 인생을 맘껏 조종해 자신의 욕망과 대면해 보는 것. 처음엔 양심상의 이유로 이 치료법을 거절했던 그는 결국 감시카메라로 여인을 관찰하고 그녀의 오빠를 불구로 만드는 등 타인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좌지우지하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파탄에 빠진 여자의 삶을 회복시키고 나아가 윤리적 경영에 대한 신념을 지키는 도덕적 선택을 한다.

인간의 도덕성을 둘러싼 갈등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한 두 작품은 번역 수준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는 마치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대화를 듣는 듯 매끄러운 번역이 돋보였지만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은 지나친 직역과 어색한 단어 사용이 빈번해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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