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 새로 나온 책]

『반대자의 초상』

테리 이글턴 지음┃
김지선 옮김┃이매진┃432쪽┃1만7천원
최근 대중의 지적 욕구가 높아지면서 철학과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이들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의욕만 앞선 많은 사람은 방대한 지성사와 쏟아지는 대중문화의 홍수를 접하며 좌절부터 겪기 마련이다. 방학 중 출간된 두 책 『반대자의 초상』과 『철학 광장』은 지식의 세계에 ‘입문’하려는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고 방대한 사상의 흐름을 따라가도록 돕는 ‘내비게이터’ 역할을 자처한다.

테리 이글턴은 영문학계에서 골수 사회주의자, 급진주의자로 이름 높은 문화평론가다. 마르크스주의 개념들을 재해석하며 주류 문단을 향해 반란을 일으킨 ‘68세대’의 대변자로서 지 금까지 그가 펴낸 『성스러운 테러』, 『우리 시대의 비극론』 등은 영문학의 거장들에 대한 도전 의식이 가득했다. 제목부터 ‘반대자’를, 부제에 ‘삐딱하게’를 전면에 내세운 『반대자의 초상』에서는 유토피아에서 시작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20세기 지성사를 수놓은 저작에 대한 저자의 서평을 모아놓았다. 

반대자를 자처한 저자의 매력포인트는 ‘까칠함’으로 무장한 비판이다. 예이츠, 비트겐슈타인, 스피박과 같은 기라성 같은 석학들의 사상을 훑어나가면서도 예리한 시선은 시종일관 흔들림이 없다. 일례로 저자는 “지난 몇십년 동안 유럽에서 출현한 사상가들 중 압도적으로 명민하다”는 지젝의 글을 비평하면서 “방대한 지식을 현란하게 과시하지만 실은 강박적인 반복을 숨기고 있다”며 지젝의 현학적 저술 스타일을 꼬집는다. 책이 비평하는 대상에는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도 포함돼 눈길을 끈다. 저자는 베컴의 자서전을 두고 “베컴은 평범한 남자가 되려 전력으로 연기하는데 사실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그것이 그의 본모습이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대중문화와 필로소페인』

김용석 지음┃한겨레 출판┃484쪽┃1만6천원
한편 『철학 광장』을 선보인 철학자 김용석은 전작 『서사철학』(『대학신문』2009년 11월 9일자)에 이어 대중문화와 철학적 사유의 접목을 시도한다.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대중문화의 ‘숨겨진 깊이’에 주목한 그는 그간 대중문화와 철학적 사유 사이의 엇박자를 해소하며 대중문화를 철학적 사유의 장으로 발굴해낸다. 저자의 이러한 시도는 그간 한겨레에 집필해온 여러 문화칼럼에서 이뤄져왔다.

책이 펼치는 철학적 사유는 공연·방송·광고·문자·애니메이션·영화 등 우리 시대 대중문화의 전 영역을 종횡무진한다. 저자는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열풍을 일으킨 ‘미드’ 수사물 속 추리 과정에서 현대 과학의 물질환원주의를 읽어낸다. ‘형사 콜롬보’를 위시한 이전의 수사물에서는 수사관이 인물의 행동이나 심리를 통해 범인을 찾아냈다면, CSI를 포함한 최근의 수사물에서는 증언보다는 증거를 신뢰하고 철저한 현장 검증으로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기 때문이다. 한편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신화에서 저자는 그의 성공적인 연설을 가능케 한 글쓰기의 가치를 문자라는 효소를 가지고 생각을 발효시키는 ‘발효 문화’로 설명한다.

비슷한 시기에 사이좋게 출판된 『철학 광장』과 『반대자의 초상』은 방대한 분량의 철학적 사유를 명쾌하게 요약해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구성도 백과사전식으로 돼 있으니 원하는 부분만 발췌해 읽을 수도 있다. 개강을 맞아 사회와 문화를 바라보는 사유를 한차원 ‘업데이트’하고픈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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