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 급변한 현 상황에서
우리의 득실을 냉철히 검토할 때
지난 2년 반의 결과 반추하며
공동체적 평화체재로 나아가야

정근식 교수
사회학과
신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태풍이 한차례 지나갔다. 우리 캠퍼스에서도 많은 나무들이 가지가 부러지거나 뿌리가 뽑혔다. 이제 피해 복구가 마무리돼가고 있지만 뿌리가 깊지 못한 나무들이 주로 피해를 입는다는 평범한 교훈을 태풍이 던져준 듯 하다.

지난 여름 방학에 우리는 한국전쟁 60주년과 국권침탈 100주년을 넘겼다. 그리고 9월이 시작되자마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급변할 듯한 징후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북미회담의 가능성과 동아시아 평화체제가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지만 3월말의 천안함 사건은 한국정치에 불어닥친 태풍처럼, 지난 20년 이래의 최악의 남북관계와 신냉전이라고 할 정도의 국제적 긴장을 가져왔다. 이 사건이후 좀 더 굳건해진 한미동맹에 상응해 북중관계가 강화됐고, 전략적 동반자관계라고 말할 정도까지 발전했던 중국과의 관계는 서먹해졌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주도권이 강화될수록 국제적 부담과 위험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시민사회의 신뢰도 낮은 수준이다. 그 사이에 미국은 동아시아 전략의 최대의 현안이었던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를 해결했고 일본은 이 후폭풍으로 총리가 교체됐다. 북한은 이 국면을 후계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이제는 이 국면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를 냉철히 검토할 때가 된 듯하다. 신냉전으로 발전하면 한국의 경제나 국제정치적 위상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 명약관화해졌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가 지난 냉전적 발전의 국제적 환경과는 너무 다른 조건에 놓여 있다는 것을 우리 정부가 종종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1987년 이후 한국은 참 운이 좋은 나라였다. 비록 약간 무능하거나 부패가 있었다해도 역대 정부는 역사에 기록될만한 업적을 적어도 한두가지씩은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김영삼 정부의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해체, 김대중 정부의 IMF 극복과 남북화해, 노무현 정부의 탈권위주의화와 과거청산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약간 소란스럽기는 하지만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뤄냈을 뿐 아니라, 역동적인 실험이 가능한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를 생각하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앞으로 2년 반이 지나면 ‘이 정부가 무엇을 남겼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데, 현재까지는 ‘실용’과 ‘선진화’가 세계적 발전의 대세와 잘 어울리는 가치였으며 그것이 충분히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됐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역사에 기록 될만한 업적이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장기적 발전방향에 충실할 때 이뤄지는 것이다. 현재 동아시아는 세계 2차대전과 한국전쟁으로 만들어진 질서, 즉 동아시아 분단 냉전질서가 해체되고 공동체적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장기적 과정에 놓여 있다. 남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 분단체제는 1970년대 중일수교, 오키나와 반환, 미중수교라는 1단계 해체를 겪었고 1990~92년의 한러수교와 한중수교라는 2단계 해체를 겪었으며 이제 3단계 해체, 즉 북미수교, 북일수교, 그리고 한반도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국면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동아시아에서 탈냉전은 유럽과는 달리 20년 가까이 지연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 자유롭게 소통하고 협력하는 세 번째 국면으로 나아가는 것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

현 정부가 출범할 때의 대외정책은 이 세 번째 국면이 북한의 급변에 의해 의외로 빨리 올 것이라는 전망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대북정책을 논할 때는 늘 원칙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 원칙은 실용과는 거리가 멀다. 사태는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을 뿐더러 설사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있는가에 대한 답은 유예된 채 남아 있다. 지난 2년 반의 실험결과를 좀 더 냉정하고 허심탄회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만약 2007년 서해 평화협력지대 구상이 계승됐더라면, 지금과 같은 딜레마가 발생했겠는가. 모름지기 우리 정부는 장기적으로 볼 때 분단비용보다는 통일비용이 적고, 통일비용보다는 통일이득이 크다는 철학을 공유하기를 바란다.

새로운 계절, 정치군사적 긴장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자리에 좀 더 뿌리가 튼튼한 민족번영의 나무가 자라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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