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눈에서 기억해야 할 것
태풍의 눈에서 기억해야 할 것
  • 이상석 편집장
  • 승인 2010.09.05 0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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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장악으로 비판기능 잃은 언론
태풍 못지않은 피해 가져올 것
고요한 태풍의 눈 속에서도
비판의 끈 놓지 말고 진실을 봐야

이상석 편집장
한반도를 관통한 곤파스의 위력은 놀랄만했다. 초속 40m/s의 이 소형태풍은 한반도에 고작 4시간 머물렀지만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연일 계속되는 악천후는 비단 날씨 얘기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메이저 언론사가 모두 똑같은 목소리를 내며, 여론을 조성해 국민의 눈과 귀를 흐릴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KBS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MBC도 휘몰아치는 언론장악의 태풍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경영진은 개편을 맞아 종합편성채널 도입에 따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사보도프로그램인 ‘김혜수의 W’, ‘후 플러스’ 등의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뉴스데스크’의 주말 편성시간을 한시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잇따른 시사프로그램 축소와 폐지로 MBC의 비판기능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PD수첩과 시사매거진2580, 후플러스와 같은 시사보도프로그램들이 큰 차이가 없다며 통·폐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경영진 앞에 ‘언론’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이미 퇴색해 버린듯하다. 

최근 4대강 사업의 허구성과 부적합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PD수첩 ‘4대강’편 역시 방송시작 불과 2시간 전 사전검열로 불방됐다. 결국 일주일동안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친 후에야 PD수첩은 겨우 방송될 수 있었지만 20년 만에 불거진 PD수첩 사전검열 논란은 정부의 언론 장악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실감하게 해줬다.

지난 2월 엄기영 사장의 사퇴에서 불거진 정권의 언론장악 논란은 이후 ‘방문진 교체’, ‘쪼인트’ 파문으로 그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됐고 정권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던 MBC의 비판정신은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급격히 감퇴했다. 

2008년 등장한 MB발(發) 초대형 태풍은 앞을 가로막거나 뜻을 거스르는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 소리 없이 언론을 하나 둘 잠식해가는, 선뜻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태풍은 역대 한반도에 가장 큰 피해를 낸 사라(Sarah)에 버금갈 정도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미 정권의 일기예보에 예정된 강력하고 지독한 폭풍은 당분간 정체 전선을 형성하며 꽤 오랫동안 언론을 비켜가지 않을 전망이다. 정권의 눈엣가시로 여겨졌던 MBC에서 추진되고 있는 개편 논란은 MBC가 KBS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태풍의 눈 안에서 보이는 하늘은 고요하기만 하다. 태풍의 ‘고요한 눈속임’에 길들어 있는 우리는 태풍이 앗아갈 위험과 혼란은 생각지도 못한 채 태풍의 눈이 보여주는 맑은 하늘만 응시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가 장악해 버린 언론은 비판의 기능을 상실한 채 철저하게 현실을 왜곡해서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잊고 있지만 마주해야 할 진실은 태풍의 가장자리에 있다. 태풍이 앗아간 것들, 앗아갈 것들을 기억하며 눈앞의 현실을 그대로 믿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태풍이 지나가고 있다. 태풍의 눈 안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언제까지나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을 인식하고 쉽사리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이 현실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최소한 우리가 진실을 낯설게 느끼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것이 바로 태풍이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비판의 끈을 놓지 말고 눈과 귀를 열고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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