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탄생 백주년]

오는 23일(목), 한국 문학사에서 ‘희대의 천재’로 기억되는 시인 이상이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이상의 독특한 경력과 난해한 작품 활동은 오랫동안 그의 이미지를 ‘기인’으로 ‘박제’해왔다. 그러나 최근 이상이 1930년대에 유행한 모더니즘 이론을 수용하고 발전시켜 당대에 이미 사상의 최선두를 달리고 있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이상이 문학사에 그은 획은 형식적 독특함뿐 아니라 사상적 측면에서도 빛난다. 이에 『대학신문』은 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상 문학에 녹아있는 사상을 재조명해본다.

삽화: 유다예 기자 dada@snu.kr

연구실에서 기자를 앞에 둔 신범순 교수(국어국문학과)는 “다른 문인들을 다 합쳐도 이상만 못할 것”이라며 “이상을 뛰어넘는 시인은 없다”고 힘줘 말한다. 이상에 대한 문학사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신교수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올해 탄생 백주년을 맞은 이상을 향한 극찬은 그칠 줄 모른다. 그가 불우한 시대에서 짧은 생을 살다 갔고, 사후에 상당수의 작품이 유실된 점을 고려한다면 적은 수의 작품만으로도 위와 같은 극찬을 이끌어낸 이상을 ‘천재’라 평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국문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조차 “이상은 천재다”는 명제는 항상 참으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왜 이상이 뛰어난 문인인지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은 이상 작품의 난해함부터 떠올리기 마련이다. 일반인들의 이상에 대한 관심은 주로 수식과 기호로 뒤덮힌 난해한 문학 형식에 집중돼있다. 그러나 최근 그러한 형식보다 시대를 앞서나간 그의 사상적 가치가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상(李箱)의 이상(理想)이야말로 식민지 조선의 이상(異常)한 환경 속에서도 그를 평범한 문인 이상(以上)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상(異常)한 세계를 바라보는 이상(李箱)한 방법

1930년대를 주름잡던 당대 문인들의 입을 빌어보면 이상은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은 ‘스타’였다. 1933년 『가톨릭 청년』지에 발표한 시는 “유행하는 일본 젊은 시인들을 흉내냈다”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 이듬해 「오감도」를 연재하기 시작하고 1936년 『날개』를 발표하면서 문단의 총아로 거듭난다.

여기서 이상은 당대 모더니즘 문학을 선도하는 ‘모던 보이’로 평가받는다. 모더니즘은 근대적 감각(modernity)을 나타내는 예술적 경향으로, 근대적 감각을 자극하는 대상으로는 자본주의와 시민사회, 도시 문명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상이 활동한 시기인 1930년대의 문단에는 1920년대 서구에서 등장한 모더니즘이 수입돼 유행하고 있었다. 모더니즘은 이상 작품을 이해하는 기본 연구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간 이뤄진 연구 역시 상당 부분 모더니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상 연구 1세대에 속하는 김윤식 교수(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는 ‘모더니즘’을 특별히 ‘근대성에 대한 비판’으로 정의하고 이상의 진가를 여기서 찾는다. 당대에 모더니즘의 선두를 달리던 이상이 근대성이 가져오는 모순을 치열하게 비판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근대 문명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의 폐해와 비인간성을 수반했고, 이상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예외 없이 근대의 폐해와 맞닥뜨린다. 「오감도」와 같은 이상의 초기 시에는 이런 근대의 어둡고 기괴한 면모가 부각돼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이상은 자신이 근대성을 온전히 경험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절망에 빠진다. 식민지에서 빈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실업자 이상은 제대로 된 근대 문명에 소속감을 느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라난 환경부터 근대 문명의 ‘타자’에 속했던 이상은 작품을 내놓은 후에도 그의 사상을 수용할 만한 독자가 조선에 없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좌절한다. 따라서 김교수는 이상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죽음과 자학적인 에피소드에 모더니스트로서 그가 겪었던 절망과 좌절이 투영돼있다고 말한다.

모더니스트로서의 이상을 주목한 연구자는 김교수뿐만이 아니다. 서영채 교수(한신대 문예창작학과) 역시 김윤식 교수와 마찬가지로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죽음과 자학 이미지에 집중하지만, 그는 이를 예술에 대한 이상의 태도로 연관짓는다. 서 교수가 2000년대에 내놓은 연구 결과에는 ‘예술가이면서 예술을 뛰어넘고자 한 모더니스트’로서의 이상이 재조명됐다. 근대성을 비판하는 많은 예술가들은 예술이 갖는 ‘권위’로 근대문명을 ‘심판’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이상은 작품 속에서 마조히스트처럼 자신을 조롱하고 깔아뭉개면서 예술의 권위를 단호히 거부한다.

서교수는 이상의 자기부정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라는 견해를 보인다. 현실을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근대성을 비판하는 예술은 스스로 우월한 지위를 부여하면서 속물적 존재들과 비슷해질 수 있는데 이상은 이러한 지위를 부정하며 예술의 본령(本領)을 지켜냈다는 것. 이상 작품 속에서 때로 ‘엽기적’이기까지 한 위태로운 자학과 기행은 역설적으로 예술성을 지켜내기 위한 극한의 노력이었다. 따라서 모더니스트로서의 이상은 동시대의 다른 문인들보다 근대성을 더욱 철저하게 비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이상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성적 코드에 주목한 이경훈 교수(연세대 국어국문학과)도 이상 문학의 초점이 근대성 비판에 있다고 결론 내린다. 『이상, 철천의 수사학』에서 그는 콘돔·매춘·임질 등의 성적 코드들이 당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작품에 빈번히 등장하는 ‘연애’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사적 영역이지만, 근대문명사회에서는 이마저 화폐경제의 거래 수단으로 전락한다.

『날개』에서는 인물 간의 관계가 돈으로 좌우되는데, 일례로 주인공은 아내에게 돈을 주고 나서야 아내의 방에서 처음으로 잘 수 있게 된다. 결국 가장 순수해야 할 ‘연애’관계마저 돈이 오가는 ‘매춘’이 되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근대 문명과 물질만능주의의 비인간성은 더욱 부각된다. 이 교수는 “아내와 ‘거리의 여자’, 그리고 집 안과 거리의 경계가 모호한 소설 『날개』는 근대성의 일그러진 단면을 과장·집약한 것”이라 말했다.

이상(理想), 그 이상(以上)의 이상(李箱)

이상 문학 연구의 ‘정석’인 모더니즘을 넘어 이상의 독특한 역사 철학 인식을 조명하는 연구도 눈길을 끈다. 신범순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이상을 ‘모더니즘 예술가’로 박제하는 것에 반대하며 “이상은 당대에 이미 모더니즘은 물론,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뛰어넘은 사상가”라고 상찬한다. 그는 이상 문학의 중심 모티프인 ‘거울’을 “깊이가 없는 거짓 공간”으로 해석한다. 여기서 ‘깊이’는 근대문명이 간과하는 인간성을 의미하며, 따라서 평면인 거울은 자본주의에 종속돼 평면적 사유에 갇힌 세태를 풍자하는 장치다.

이상은 이렇듯 거울로 형상화되는 근대 문명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밤낮을 거꾸로 살고 책도 거꾸로 읽는 이상의 기행은 거울 분석의 관점에서 보면 탈출을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물이 거꾸로 비치는 거울 속 세계가 현실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려면 현실이라 인식되는 거울 속 세계를 다시 거꾸로 뒤집어 본래 사물의 상(像)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거울이 상징하는 ‘평면’은 역시 근대성을 비판하는 도구가 된다. 평면에 고정된 두 점이 결합할 수 없듯 근대성은 서로 다른 주체들의 구별 및 분리에 집착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면에서 탈출한 입체적 공간에서는 더 높은 차원에서 각각의 주체들을 평등하게 결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이상의 사상은 근대 문명에서 조각나버린 ‘총체성’의 회복을 시도하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를 “기존의 패러다임을 초월하는 혁명”으로 평가한다. 1930년대에 이상은 이미 근대문명 전체를 뛰어넘는 탁월한 철학적 안목을 지녔지만 이러한 사유는 지금껏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이상(李箱) 이상(以上)은 없다

당대에 독보적인 사상을 자랑했던 이상 문학은 그 자체로도 혁신을 가져왔지만 그 정신이 후대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며 계승된다. 1990년대 초 이상 전집을 펴낸 이승훈 시인은 “이상은 내 창작의 뿌리”라며 “그의 전위적 실험성, 아웃사이더적 성향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2000년대 이후에도 이상은 젊은 시인들의 감수성을 통해 계승된다. 일례로 이장욱의 소설 『고백의 제왕』을 위시한 고백체 소설은 이상 문학의 계보를 잇는 것으로 읽힌다. “국내 문단에서 혁신적 성향을 띠는 이는 모두 이상의 추종자로 봐도 무방하다”는 신범순 교수의 견해를 따르자면 이상은 ‘파격’의 시작이자 끝인 셈이다.

우리 문인 가운데 세계 문학사에 이름을 올릴 만한 사람을 꼽아봐도 단연 이상이다. 이상의 문학은 ‘비교 문학의 근거지’라고 손꼽힐 만큼 외국 문학과 연계된 연구 가능성이 열려있다. 이는 단순히 이상이 일본어로도 집필 활동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상은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일본 등의 문학을 접하고 자유롭게 패러디해 녹여내는 등 작품 속에서 세계 문학이 수용된 흔적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과 예술이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드는 ‘월경(越境)’에 주목해온 란명 교수(일본 지셴여대 인간사회학부)는 이상의 이러한 국제적 감각을 높이 평가한다. 비교문학 전문가인 그는 동시대의 일본 문학과의 비교에서 이상의 작품에 반영된 대결의식을 읽어낸다. 일례로 이상의 단편 『지도의 암실』에는 당시 열강과 동북아 국가 간 세력 긴장이 고조된 국제도시 상하이를 소재로 한 일본 소설 『상하이』를 의식한 흔적이 남아있다.

이상 문학이 ‘세계 문학’의 반열로 들어설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김주현 교수(경북대 국어국문학과)는 “이상의 시가 미국의 한국 유학생들과 현지 학생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한국 문학 중 세계화에 가장 적합한 작품은 이상의 문학”이라고 평가했다. 외국에서는 1970년대 멕시코에서 『오감도』가 자국어로 번역된 이래 미국·일본을 거쳐 최근에는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지에서도 이상 문학 작품이 번역·출간되고 있다.

외국 학자들의 본격적인 이상 연구 역시 시동이 걸리고 있다. 지난 7월에는 한국의 이상문학회 학자들과 일본·미국 연구자들이 일본 무사시대에 모여 ‘이상 탄생 100주년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에 앞선 지난 6월 말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이상 문학을 주제로 한 전시, 퍼포먼스, 콘서트 등이 열려 현지인들을 비롯해 여러 학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앞으로 이상 문학의 세계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외로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더 많은 연구자들에게 매혹적인 주제로 다가서는 이상의 문학 작품들. 이상 탄생 100주년인 오늘로부터 또 다른 100년 혹은 그 이상이 지나더라도 이상의 진면목은 ‘모던보이’라는 고정된 틀 속에 박제되지 않고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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