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사람'하면? - 이종상 교수(미대ㆍ동양화과)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추상화풍으로 그려낸 원형상(源形像) 작품들과 고구려 벽화 기법을 계승한 동유화 등으로 유명한 일랑 이종상 교수(동양화과). 우리가 매일 쓰는 오천원권 지폐의 이이 선생 영정도 그의 작품이다.


“‘생각하는 사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반가사유상이 아닌 로댕의 작품을 떠올리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며 이 교수는 서양 미술에 집중돼 있는 미술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더불어 “익숙한 산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을 배우지 않고 남의 것을 따라하다 보니 우리 것을 즐기지 못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이 교수는 박물관장으로 재직하면서 ‘발해’, ‘독도’ 등의 전시를 기획해 잊혀져가는 우리 역사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켜 왔다. 또 ‘열린 박물관’을 지향,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요 교양 강좌를 실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박물관장실에 있던 짐들이 거의 정리될 무렵, 그는 “서울대 미술관의 건립 또한 문화 공유의 실천”이라며 “우리 학생들, 후배들은 ‘공부해서 남 준다’는 생각으로 다른 이들과 자신의 앎을 나눠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유미 기자

또다른 배움터인 자연으로 가겠다 - 정탁영 교수(미대ㆍ동양화과)

“인생이 나그네길인 것처럼, 또 다른 배움터인 자연 속으로 간다고 생각하면 아쉬울 것도 없지. 학생들 보고 싶을 걱정만 빼면.”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부드러운 인상으로 퇴임 소감을 밝히는 정탁영 교수(동양화과)는 퇴임을 맞아 산문, 시, 그림을 묶은 화문집 『잊혀진 것들』의 출간을 준비 중이다.


정탁영 교수는 60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83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해 왔다. 대표적인 작품인 추상수묵회화 「잊혀진 것들」 연작은 자연주의적인 색채를 담아내는 동시에 전통적 동양화 기법을 넘어서서 한국 현대 수묵의 새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퇴임 후 정 교수는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틈틈이 ‘자연과 인간, 그리고 길’이라는 주제로 고향에 실제로 오솔길을 가꿀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2~30년 전부터 평생 하고픈 일을 설계해 왔다”며 자연조경을 통해 한국의 전통미학을 풍요롭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 교수는 “서양문물의 여과와 전통문화를 동시에 탐구하는 것이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서양과 동양의 합류 기점에서 문화의 정수를 살리는 데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이다람 기자 oops03@snu.ac.kr


분노할 줄 아는 서울대생 되길 - 손봉호 교수(사범대ㆍ사회교육과)

 손봉호 교수(사회교육과)는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대표로 활동하는 등 시민운동을 주도해왔다. 그는 “철학이나 신학은 약자의 고통을 줄이는 것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학문과 시민운동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손 교수는 61년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65년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마쳤으며 72년 네덜란드 자유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83년부터 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해왔다.


손 교수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 앞장서게 된 이유에 대해 “최근 한국 기독교는 사회에 오히려 해를 끼치고 있다”며 “종교의 본질인 자기희생, 봉사, 섬김의 가치를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공선협 활동을 통해 두 차례의 선거법 개정을 이뤄낸 일이 보람으로 남는다”며 “서울대 학생들도 사회의 잘못된 점에 분노할 줄 알고 공익에 관심을 가져야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앞으로 사회 활동은 후배들에게 넘기고 집필활동에 전념하고 싶다는 손 교수에게서 실천하는 지식인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윤주 기자


꾸준한 운동으로 삶의 지혜를 얻길 - 정성대 교수(사범대ㆍ체육교육과)

“시원섭섭하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이제 때가 된거야.” 정성태 교수(체육교육과)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읊조렸다. 그리곤 이내 단아한 웃음을 지었다.

 
정 교수는 60년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6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당시 한국에서는 드문 분야였던 운동생리학을 전공했다. 당시 운동 생리학 분야는 실험실조차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을 정도로 연구 여건이 열악했다. 게다가 낯선 학문인 탓에 그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고 회상했다.

 
그동안 정 교수는 사범대 학장보, 서울올림픽 학술대회 부위원장, 체육과학 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국민체육진흥공단 건강체력센터 이사장이다. 정 교수는 “운동은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뿐 아니라, 안전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라며 “체육의 진정한 가치는 수양의 단계에 이르러 지혜를 얻을 때 드러난다”고 말했다. 그는 “운동을 10년 이상 꾸준히 하면 성격 또한 변화시킬 수 있다”며, 학부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운동할 것을 주문했다.  

                                                               박근복 기자 p1977@snu.ac.kr


대학은 불야성의 상아탑이 돼야 - 박만기 교수(약대ㆍ약학과)

“불야성의 상아탑, 대학은 그런 곳이 돼야 합니다.” 박만기 교수(약학과)는 퇴임을 앞두고서도 학문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박 교수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며 퇴임 후에 가공인삼인 선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선삼은 암세포 사멸작용이 월등하여 암환자들에게 각광받고 있다”며 선삼을 판매하는 벤처기업을 만들어 이미 성공한 상태라고 말했다.


59년 약대에 입학한 박 교수는 우리나라 의약품관련 기기분석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또 ‘한국약학대학협회’ 회장(1996∼7), 대검찰청 과학수사자문협의회 위원(1998)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법과학회’ 감사를 맡고 있다.

 
박 교수는 어렵게 공부했던 대학교 재학시절을 회상하며 학생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생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활을 위해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목표가 돼서는 안된다”며 학문에 매진하기를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강나림 기자 nalim03@snu.ac.kr


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음악가 - 박인수 교수(음대ㆍ성악과)

89년 정지용의 「향수」에 곡을 붙인 노래를 대중가수 이동원과 듀엣으로 열창하면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접목을 시도한 성악가’로 잘 알려진 박인수 교수(성악과). 그는 “음악은 듣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대중들이 듣고 감동받을 수 있어야 진정으로 좋은 음악이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현재 한국 민요를 서양 창법으로 부르는 창법을 연구·발표하고 있다. “음악은 사람의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는 철학을 가진 그는 퇴임 후에도 한국인의 뿌리에서 나온 한국의 음악을 좀더 깊게 느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68년에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72년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박 교수는 라보엠, 마탄의 사수, 리골레토 등 수많은 오페라의 주역을 맡는 등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쳐 왔다.


특히 서양 음악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직접 가르친 제자들이 해외 유수 콩쿨에 입상했을 때 교육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는 그는 “가르치고 연구하는 데 열정이 많았다”며 퇴임을 앞두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경진 기자 lkj0930@snu.ac.kr


바이올린처럼 인생을 켜다 - 정탁영 교수(미대ㆍ동양화과)

“훌륭한 교수님, 제자들과 함께 하는 영광을 가질 수 있었기에 나는 행운아입니다”라는 말로 퇴임소감을 밝힌 현해은 교수(기악과).


현 교수는 4년간 볼티모어 오케스트라에서 제1바이올린주자를 역임한 후 69년에 귀국해 그해 강단에 섰다. 현 교수는 “유학 도중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당시에는 유학길에 오르면 귀국하기가 쉽지 않아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현 교수는 서울대 초대 음대 학장으로 ‘그집앞’을 작곡하기도 한 현제명 씨의 막내딸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열의가 매우 강했다고 한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음악에 굉장한 도움이 된다.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이 음악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퇴임 후에 현교수는 현재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한음챔버’에서 우리나라에서 많이 연주되지 않는 곡을 발굴해 제자들과 함께 연주를 계속할 것이라며 “후배들이 지금보다 사회에 대한 관심을 더 높여 많은 사람들이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정식 기자 snuace02@snu.ac.kr


글로벌 시대에 앞서가는 '386' 교수 - 김철위 교수(치대ㆍ치의학과)

“386 세대는 1930년대 태생의 팔팔한 60대를 일컫는 말이지요. 사오정(40∼50대 정년퇴임)들이 대부분인 현대사회에서 이제 나는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라는 농담으로 김철위 교수(치의학과)는 애써 아쉬움을 감췄다. 


김 교수는 치학연구소 소장과 ‘국제치과연구학회’(IADR) 한국지부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국내학술지 원저 및 국제학술지 SCI 논문 265편, 국제학술지 초록 107편, 국내 학술지 종설 517편을 게재하는 등 혁혁한 학술 업적을 이룩했다.


또 장차 의료시장이 개방될 것을 대비, 미국치과의사 면허시험 지도에 박차를 가해 학생들이 세계적인 치의학도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김 교수는 “글로벌 경쟁시대에는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해야 승산이 있다”며 많은 제자들이 미국치과의사 면허시험에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달리는 기차 속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단지 풍경에 불과합니다. 기차에서 내려 바깥세상의 참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김 교수에게서 퇴임을 앞둔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박정식 기자 snuace02@snu.ac.kr


장애인의 미소를 위해 봉사할 것 - 임창윤 교수(치대ㆍ치의학과)

퇴임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서도 임창윤 교수(치의학과)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치과치료를 손쉽게 받을 수 있도록 치료, 모금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스마일 복지재단 공동대표를 맡아 장애인 구강보건증진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임교수는 “뇌성마비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중에는 칫솔질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이들은 치과기구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치료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치의학도는 치료, 연구, 봉사의 세 영역을 모두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며 “떳떳하고 정당하게 살되 봉사정신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57년에 서울대 치대에 입학해 학사를 거쳐 석사·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임 교수는 67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 치대에서 후학 양성 및 진료활동에 힘써왔으며, 재직 중 서울대병원 치과진료부 구강병리학과 과장, ‘국제치과연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마지막으로 임 교수는 전쟁 후 시약이 없어 힘들게 공부했던 대학시절을 회상하면서 “은사들이 뼈대를 만들어줬고, 우리 세대가 벽돌을 쌓았으니 이제 후배들이 그 공간을 채워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경진 기자

'사람'이라는 화두 잊지 않길 - 최상묵 교수(치대ㆍ치의학과)

“요즘 의학에는 기술만 있지, 사람이 없어.”


최상묵 교수(치의학과)는 병원에는 질병과 기계만 있을 뿐 환자와 의사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기술을 연마한 숙련공이 되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질병을 가진 ‘사람’에게 접근하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며 치과의사의 기본 덕목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을 꼽았다.


사람 향기가 묻어나는 의학에는 예술·인문학적 소양이 필수적이라며 그는 치대 소속 관현악 동아리 ‘덴탈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던 30여 년 전을 회상했다. ‘아름다운 의학’을 위한 노력을 보여주듯 연구실에는 갖가지 음반이 가득했다.


학문적 불모지였던 치주 조직, 치주 보정에 관한 연구에 힘써 온 그는 90년부터 4년 간 서울대병원에서 치과병원 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엄이자(嚴而慈)’라는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후학들에게 사람이라는 화두를 남기고 싶다는 최 교수.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니 정년”이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30여 년 교직 생활의 아쉬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김남희 기자 candy8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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