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임페리얼 크루즈』

제임스 브래들리 지음 | 송정애 옮김 |
프리뷰 | 384쪽 | 1만 6천 8백원  
지난해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전 세계로부터 오바마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단순히 미국 대통령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빈축을 샀지만 정작 미국 국민들은 자국 대통령의 수상 소식을 축하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해 한 인물의 ‘평화’라는 가면 뒤에 감춰진 제국주의적 야욕이 드러나 미국인들을 놀라게 했다. 최초의 미국인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허위를 폭로하며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임페리얼 크루즈』가 지난달 번역· 출간됐다.

저자 제임스 브래들리는 2차 대전을 소재로 한 논픽션 『플라이보이스』에서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병사들의 참상을 그린 바 있다. 1905년부터 1910년까지 ‘비밀외교사’ 연대가 담긴 이번 작품에서 그는 전작의 비극이 루스벨트 대통령의 제국주의적 행보에 의해 탄생했다고 단언한다. 

1905년 아시아에도 손을 뻗치기로 마음먹은 루스벨트는 평화적인 외교 사절단을 가장한 ‘밀사’를 파견한다. 사절단이 탄 함대에는 육군장관 태프트를 비롯한 다수의 관료가 타고 있었다. 세계 언론의 이목이 사절단에 동행한 루스벨트의 딸 앨리스에게 쏠려 있는 틈을 타, 태프트는 필리핀에서 총독으로 부임해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일본이 대한제국을 보호국화 하는 것을 승인했다. 을사조약이 임박한 시기 앨리스를 극진히 대접하며 미국이 일본의 발호를 막아주기를 기대했던 고종에게 돌아온 것은 “나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싶다”라는 루스벨트의 답변이었다. 함대 파견의 진짜 목적은 책 제목 그대로 ‘제국주의 순방’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침략 자체보다 그 방법이 철저히 위선과 기만으로 점철됐다는 사실에 목소리를 높인다. 루스벨트는 상원의 승인도 없이 태프트에게 비밀리에 지령을 내려 일본과의 밀약을 체결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러일전쟁 후 양국의 화친을 중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미국에 돈독한 우방으로만 보였던 일본이 실은 제국주의 침략 야욕을 위한 동료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승전을 접한 후 “일본이 우리 게임을 대신해 줘 참 기쁘다”는 루스벨트의 어록은 그의 치밀한 외교 전략이 서양판 ‘이이제이(以夷制夷)’였음을 드러낸 것이다.

루스벨트가 뿌린 제국주의의 씨앗은 이후 미국에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미국에 의해 독립운동을 탄압받은 필리핀은 무분별한 폭탄투척과 테러로 미국 병사들의 무덤이 됐으며, 진주만 공습에 의해 미국 영토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 전작 『플라이보이스』에 나타난 일본군의 식인 행위에 제물이 된 미국 병사들도 제국주의 야욕 때문에 벌어진 세계적 참상의 희생양이었다.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할 뿐이라는 현실주의 관점에서 조명할 때 가쓰라·태프트 밀약에서 미국이 을사조약을 승인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자국의 침탈 행위나 지도자의 비열한 행동을 ‘애국적’이라는 수식어로 포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미국인들이 루스벨트 대통령에 열광했던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베트남전 참전, 이라크·아프가니스탄 파병 등 국익을 명분으로 여러 차례 파병에 나섰던 한국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판 『임페리얼 크루즈』가 등장해 한국인의 왜곡된 역사의식이 폭로되기 전 먼저 자국중심주의의 그림자를 의심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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