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유다예 기자 dada@snu.kr

서울대 시설노동조합(시설노조)이 설립된지 10년이 지났다. 시설노조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학내 언론과 대자보 등을 통해 청소, 방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많은 담론이 형성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자들의 실태에 대한 관심은 점차 줄어들었고 이제는 노동절이 돼야 간간히 등장하는 옛날 이야기가 됐다. 이에 『대학신문』은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잊혀져가는 시설노동자를 재조명해보며 그들이 10년간 걸어온 길과 간접고용의 현 주소를 짚어봤다.

멈춰버린 시설노동자의 10년

시설노조의 탄생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용역업체가 경기침체를 이유로 미화 노동자의 임금을 월 42만원에서 37만원까지 삭감하자 이에 격분한 시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이들은 노조 창립 직후 임금 상승과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총파업을 감행했다. 결국 그들은 10만원의 임금 상승과 상여급 200%지급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시설 노동자의 정규직화에는 실패했고 고용자의 성별에 따라 임금이 차등 지급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노조 설립 이후 시설 노동자들은 본부, 업체와 꾸준히 협상하며 노동자들의 권리 증진을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2003년 노조는 최저임금을 보장받았고 2005년에는 상여금을 포함해 최저임금을 상회하는 임금협상을 타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청소, 방호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현재 노동자들에게 교통비와 식대 지급은 꿈일 뿐이다. 또 규정시간 외 근무나 특수 업무를 할 때조차 추가수당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한 노동자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학교나 업체가 추가 업무를 지시하지만 이에 대한 수당은 전혀 없으며 교통비까지 자비로 부담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다른 노동자 역시 “실험실에서 나온 위험물질을 처리하는 일을 할 때도 미화 기본급만 받을 뿐 위험부담에 대한 추가 수당은 지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휴식을 위한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몇몇 시설노동자는 1인당 1평 남짓한 공간에 취사도구와 생필품을 구비해 두고 생활한다. 비좁더라도 휴식 공간이 있는 노동자는 그나마 형편이 낫다. 인원 배정이 적은 구역은 공간이 따로 없어 화장실 한켠에 휴식공간을 마련하는 처지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학교와 업체에 개선을 요구할 수도 없다. 본부를 향한 적극적 요구가 재계약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노동자는 “건물이 늘어나는 만큼 인원을 충원해야 한다고 본부에 적극적으로 요구했던 한 동료가 올해 업체와 계약을 하지 못하게 됐다”며 “1년 단위의 불안정한 고용 구조 속에서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해고로 직결될 수 있어 불편이 있어도 참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총파업이 있었던 지난 2000년 학생부처장이었던 이정재 교수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내년 용역회사는 현재 노동자의 반 이상을 교체할 지 모른다”고 말하며 고용 불안정 문제의 현실화 가능성을 제기했다.(『대학신문』2000년 6월 5일자)

비용 절감은 노동자의 몫에서

서울대의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서울대가 아닌 용역업체 소속이다. 서울대의 시설은 현재 22개의 용역업체에 소속된 407명의 노동자가 관리하고 있다. 용역업체는 현행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따른 법률’에 의해 1년마다 바뀌고 있다. 관리과는 “청소, 방호관련 정부 예산과 기성회 예산이 동결돼 시설관리를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용역 업체에 맡길 수밖에 없다”며 “본부의 업무가 과중한 상황에서 외부에 관리를 맡기면 업무 분산효과가 있다”는 입장이다. 용역업체도 서울대 사업장을 수주한 경력이 중요한 사업실적이 된다며 서울대 시설관리 용역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경영대 시설관리를 담당하는 청송안전시스템은 “서울대 사업장은 10명 정도의 사업장이라 순이익은 얼마 되지 않지만 이후 다른 대규모 사업장 입찰에서 유용한 사업실적이 된다”고 말했다.

이렇듯 시설관리를 용역화하는 구조 속에서 학교와 업체는 노동자의 희생을 담보로 비용절감과 사업실적이라는 상호 이득을 취하고 있다. 서울대는 용역업체에 노동자 1인당 13만원의 순이익이 남도록 용역비용을 설계한다. 미화 노동자들의 임금이 106만원으로 책정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는 적은 금액이 아니다. 한 노동자는 “노동자 관리를 용역업체에 맡기지 않았다면 노동자에게 돌아왔을 10만원이 넘는 돈이 업체에 이익금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본부의 책임회피와 업체의 이익구조 속에 애꿎은 노동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시설 노동자의 복리후생 역시 업체와 서울대의 책임회피 속에 방치되고 있다. 본부는 “식대지급과 같은 복리후생은 서울대와 논의할 것이 아니라 업체 측과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업체 측도 “제한적 최저가 입찰제로 수익을 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이라 노동자에게 식대를 지급하는 복지책은 수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시설 노동자들은 매년 업체만 바뀌는 구조 속에서 끊임없는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한 노동자는 “매년 업체가 바뀔 때마다 퇴직서를 제출하고 새 업체에 재취직한다”며 “이 과정에서 행정실이 새 업체에 특정 노동자와 계약을 거부하라고 업체에 통보하면 해당 노동자는 새 업체와 재취업을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시설노조 노원균 위원장은 “실제 새 업체와 계약을 맺을 때 행정실에서 몇몇 노동자를 배제하는 일이 종종 있다”며 “행정실에 찾아가 항의해도 현행법상 아무 문제가 없어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기존 업체에서 퇴직을 하고 새 업체와 계약을 하기 전에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상태여서 단과대 행정실이 노동자의 인사발령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이다.

시설 노동자들이 처한 불안정한 고용구조는 심지어 노조마저 개입해 고용불안을 가중시키는 빌미를 제공한다. 한 노동자는 “현 노조는 집행부와 의견이 다르면 용역업체에 해당 노동자를 해고하라고 통보한다”며 “업체도 어차피 1년만 있다가 나가기 때문에 직원에 대한 애착심이나 책임감이 없어 노조의 요청을 대부분 수락한다”고 말했다.

사진: 『대학신문』사진부


고용안정을 향한 방안

본부는 시설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국가 지원금 증액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청소, 방호 예산으로는 늘어나는 건물의 시설관리를 추가로 위탁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관리과는 “건물은 매년 늘어나지만 청소, 방호 관련 정부 예산은 10년째 제자리”라며 “예산이 지원되지 않아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조차 매우 어렵다”는 입장을 표했다. 업체 측도 지금과 같은 낮은 입찰금액으로 노동자의 후생복지에 힘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밝혔다. (『대학신문』 2010년 3월 28일)

그러나 노동계는 청소, 방호 관련 예산이 증액되더라도 본부가 노동자를 직접 채용하지 않고 간접고용하려는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문제가 종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민주노조총연맹 공공운수연맹의 정용재씨는 ‘청소업체 재계약의 문제점’이라는 글에서 “노동자들은 1년 단위 용역 재계약 과정에서 끊임없는 고용불안과 근로조건 악화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민간위탁을 철회하고 시설관리를 재직영화 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 학내 일부에서 직접 고용하고 있는 자체직원은 매년 업체가 바뀌며 재계약을 해야 하는 시설용역보다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자연대의 한 자체직원은 “본부의 직접고용으로 이전 용역업체에서 일할 때보다 고용안정이 됐을 뿐 아니라 임금을 더 받게 됐다”고 말했다.

학내에서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간접고용 철폐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법은 한국철도공사에 파견직 여승무원을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또 지난 7월에는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규정하며 파견노동자에게 정규직 지위를 확인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유상철 노무사(노무법인 필)는 “법원의 파견근로자의 근로지위가 정식 근로자라는 판결은 간접고용 노동자도 정식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맥락에서 의미를 가진다”며 “사회 전반에 걸쳐 직접고용 의무화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사회적 움직임에도 본부는 여전히 노동자들을 관리할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며 노동자들의 직접 고용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서울대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고용안정은 보장해 주되 정규직과 임금의 차별을 둬 예산 부족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들도 존재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은수미 박사는 “노동자의 고용보장에 대한 의무가 하청업체와 원청(서울대) 어디에도 없어 중간에 노조나 행정실이 인사에 개입하는 구조가 가능한 것”이라며 “임금에 차별을 두며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는 방안이 원청과 노동자 양측의 이해를 일정 부분씩 반영하기에 직접고용의 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