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의한 예술과 언론의 질식
비판적 목소리는 점점 힘 잃어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현실
표현의 자유 반드시 지켜내야

최창문 사진부장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권력을 쥔 특정 인물 혹은 집단을 비판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정부를 대상으로 한 비판은 선동적인 명예훼손으로 받아들여져 처벌의 대상이 됐다. 비판 내용의 진실성은 면책조건이 되지도 못했다. 오히려 진실이 정부에 대한 시민의 의심을 가중시킨다는 이유에서 더욱 강력한 제재의 대상이 됐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아니, 달라야만 한다. 1735년 8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재판에서 정부를 비판한 신문 발행인 존 피터 젱거(John Peter Zenger)에게 내려진 무죄 판결은 표현의 자유를 향한 진일보로 역사에 남았다. 그리고 200여년이 지난 지금, 세계 각지에서 표현의 자유를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고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9일(목) 김진애 민주당 의원은 국가건축정책위원회(국건위)가 지난해 11월에 ‘수변도시에 대한 자유로운 아이디어와 비전 제시’를 내용으로 한 공모전을 심사결과 당선작이 결정됐으나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돼있다’는 이유로 심사결과를 무효로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4대강 사업을 계기로 추진한 공모전에서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출품작이 당선됐다는 ‘팀킬’은 희극적이지만 심사결과를 뒤집어버렸다고 하면 순식간에 분위기는 반전된다.

황당한 일이지만 이런 일이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다. 지난달 말에도 공주시 금강사업팀 관계자들은 금강둔치 잔디에 새겨놓은 4대강 사업 반대를 위한 미술작품을 “이런게 무슨 예술이냐”라는 말로 폄하하며 멋대로 훼손해버렸다. 심지어 관계자는 “‘금강 죽이기’라고 일방적으로 표현한 것을 어떻게 가만히 두고 보냐”고 말했는데, 이는 명백히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음을 스스로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 같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권의 처사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할 언론들도 침묵하고 있으니 반대의 목소리는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하고 당연히 보장 받아야 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시점에서 표현의 자유를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는 국가 정책을 비판하는 예술 활동을 펼쳐도 안되고 정부의 문제를 파헤치는 방송을 내보내도 안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당연해야만 하는 일이 당연하지 않다.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현 정권의 압제는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가오는 시월 시행이 예정돼 있는 G20경호안전특별법은 국민들이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엄두조차 못 내게 할 것이다. G20기간 동안 본래 나라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만드는 군대를 국민을 상대로 동원한다고 한다. 몽둥이와 방패로 국민의 입을 틀어막고 말할 자유를, 생각할 자유를 빼앗는다고 한다. 일반적인 자의법으로 집회와 시위를 제한하고 군의 지원까지 요청할 수 있다고 하니 표현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제한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한번 ‘아무도 자신을 거부하지 못하는’ 즐거움을 맛본 정권이 그 후로 재갈을 풀어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언론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불렸던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차라리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언론의 자유, 나아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는 생각의 다양성도 발전의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저 푸른 기와 아래에 사시는 분은 언제쯤 이런 사실을 깨달아 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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