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에서 학교로 오는 길에 도시고속도로 건설현장을 지나치다 보면 ‘내 안전은 나로부터’ 라는 표어를 볼 수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한편으로 그 말의 함의가 못내 불안하다.

지난 7일 한 청년 노동자가 용광로에 빠져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조시와 함께 많은 이들이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는 사인 발표는 표어의 함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번 사고와 똑같은 죽음이 지난달 17일 동부제철에서 발생한 바 있다. 불과 한달여 사이에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반복되는 죽음은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8월 한진중공업에서는 일주일 간격으로 동일 장소에서 동일 원인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3월 대우조선에서는 아르곤 가스 사고로 2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동종업계에서 2천년대 들어 동일 원인의 13번째 죽음이었다. 건설노동자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추락사의 경우 워낙 뉴스로 자주 접해 무뎌질 지경이 되었지만, 뉴스에 자주 나오지 않는 감전 사고로만 2009년 23명이 사망하였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노동자들의 죽음이 증가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0년 들어 사망 사고가 작년 대비 7.3% 증가했으며,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가 20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 갈 우려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혹 누군가는 이러한 노동자들의 죽음이 그들 개개인의 부주의 탓이며, 노동자들이 좀 더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백번 양보한다 할지라도 삼성반도체의 경우에는 도저히 적용할 길이 없다. 현재 백혈병과 각종 암에 걸린 것으로 밝혀진 사람만 55명이며 그 중 17명이 사망했다. 그들은 단지 회사가 정한 규칙을 준수하며 일했을 뿐이다.

울리히 벡이라는 사회학자는 위험사회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현대사회에서의 위험의 특성 중 하나가 민주적이라는 점, 즉 위험이 구성원 모두에게 동등하게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논의를 빌어오면, 한국 사회의 위험이 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다 할지라도, 당신은 안전해질 수 없다. 청년실업은, 비정규직 증가는, ‘외교부식’ 특채 제도는 당신을 재해에 빠지게 만들 것이다.

인간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평범한 구성원들에게 위험을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개인들이 재해를 회피할 방법은 없다. 사회 시스템이 위험을 느끼게 하는 것, 생존을 위해서라도 시스템 스스로가 변하게 하는 방법이 유일하지 않을까

김경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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