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에서 티베트 난민을 돕던 '록빠', 한국으로 나눔의 씨앗 옮겨와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과 타클라마칸 사막에 둘러싸여 지리적·외교적으로 고립된 티베트. 2년전 중국에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인들의 대규모 유혈 시위가 벌어진 후 이곳의 긴장감은 나날이 고조되고 있다. 티베트 곳곳에는 무장 경찰들의 경계가 삼엄해졌고 지난 8일(수)에는 독립 시위 소식을 보도한 티베트 기자들을 중국 정부가 체포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결국 많은 티베트인은 현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인도의 다람살라로 향하고 있다. 다람살라에는 이미 1959년 티베트 망명 정부가 세워졌다. 그러나 이곳 역시 티베트 난민을 위한 기본적인 삶의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아 이들의 생활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티베트어로 ‘돕는 이’와 ‘친구’를 뜻하는 록빠(Rogpa)는 티베트 난민의 어려운 삶을 돕고자 남현주씨(33)를 비롯한 한국인 봉사자들이 인도 다람살라에 세운 시민단체다. 록빠는 2005년 무료 탁아소 운영을 시작으로 여성들의 수공예 작업장과 어린이 도서관을 건립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혀가며 티베트 난민들의 동반자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찾아온 여행자들의 자원봉사가 록빠의 주축이 되고 있어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인도 여행 중 다람살라에 들러 티베트 난민을 위한 봉사에 참여하는 여행객의 절반 이상은 한국인들이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록빠가 전하는 나눔의 온기를 멀리 한국으로까지 옮겨왔다. 한국에서의 록빠는 처음 별도의 사무실도 없고 체계적인 조직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 2005년부터 티베트 난민을 돕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 다람살라 현지 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는가 하면 매년 ‘피스 티베트 팽창전’이라는 문화제를 열어 왔다. 이 문화제에서는 티베트 전통 공연을 선보이기도 하고 ‘평화장터’를 통해 티베트 공정무역 상품을 팔기도 했다. 또 티베트 난민이 겪는 고통과 독립에 대한 그들의 염원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상영해 티베트의 독립운동에 힘을 실어줬다.

사진: 이다은 기자 daeunlee@snu.kr
한국의 록빠는 더욱 안정적인 활동을 펼쳐나가고자 지난 5월 종로구 사직동에 ‘사직동, 그 가게’를 열었다. 티베트 전통 차와 인도 전통 음료, 지갑, 인형 등의 수공예품을 파는 이 가게에선 이국적 향기가 물씬 풍겨온다. 가게 곳곳에 자리한 수공예품들은 모두 지난 유혈 시위로 일자리를 잃어 다람살라의 록빠가 운영하는 무료 탁아소 한 편에서 재봉질을 시작한 티베트 난민 여성들이 만든 것이다. ‘사직동, 그 가게’는 이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고자 가게에서 판매된 물건의 수익금을 모두 그들 작업장에 환원하고 있다. 또 격주 주말에는 티베트 문화를 배우고 티베트 난민들의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문화 워크숍’도 진행된다. 이 밖에도 인디 가수 시와와 오채원 밴드 등의 독립 예술인들은 ‘멜로디 잔치’를 열어 티베트 난민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노래로 전하고 있다.

록빠는 올가을에도 여전히 분주하다. 다람살라 현지 어린이 도서관을 지원하고자 지난 7월부터 준비해온 ‘록빠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오는 10월 직접 다람살라로 건너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10월 30일에는 대구에서 티베트 사진전, 독립 예술인 공연 등으로 꾸려진 ‘피스 티베트 팽창전’을 열 계획이다. 록빠의 후원금 모금을 담당하는 윤재성씨(38)는 “많은 이가 티베트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갖는 것이 록빠의 꿈”이라며 “활동반경을 넓혀 대중에게 다가가도록 노력할 것”이라 말했다. 멀리 다람살라에서 나눔의 씨앗을 옮겨온 이들이 한국에서 이 씨앗을 어떻게 싹 틔워 나갈지 앞으로의 발걸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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