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성과 결정권이 희미해
주인의 의미가 퇴색된 현실
이름뿐인 주인이 아닌
진정한 소통의 주체로 거듭나야

이소영 취재부장
오랜 봉건제와 계급제의 역사때문에 사람들이 주인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 사회에서는 모두가 지나칠 정도로 ‘주인’ 대접을 받고 있다. 세습적 권력자가 사실상 퇴출당하고 선거제가 정착돼 ‘윗분’들이 상대도 않던 ‘아랫것들’을 사회의 주인으로 대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인의 연설문이든 “국가의 주인은 여러분입니다”라는 문장이 으레 한번쯤 등장한다.

이처럼 주인이라는 말이 너무 자주 쓰여서일까, 우리 사회에서 ‘주인’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상당히 퇴색됐다. 윗분들은 아랫것들을 말로만 주인이라 부를 뿐 제대로 된 주인대접은 한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주인’이라는 단어는 으레 선거철 연설문에 쓰이는 단어일 뿐 더이상 ‘주(主)가 되는 인물’이라는 사전적 정의나 소통의 자격을 가진 주체를 의미하는 단어가 아닌 것이 돼버렸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조례시간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학교의 주인은 학생 여러분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주인대접’에 익숙해지도록 세뇌받는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리가 받는 주인대접은 강제 야간 ‘자율’학습과 두발 단속 등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나를 주인이라고 부르는 세상에 나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부조리한 현상을 십년 이상 경험하고, 결국 그것을 익숙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세속적 가치에서 벗어나 ‘상아탑’을 자처하는 대학도 ‘주인’이라는 단어의 바른 의미를 가르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다수의 구성원이 반대한다면 법인화를 하지 않겠다며 ‘학교는 모든 구성원의 것’이라는 논리를 펼치던 서울대 본부는 총투표 참여 학생 80%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멋대로 법인화를 진행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던 본부는 주인의 의견을 ‘반대 세력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며 도매금으로 넘겨버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본부는 교육센터를 짓기 위해 사범대 광장인 페다고지를 없애고, 아시아연구소 공사를 위해 오랜 역사를 가진 사회대 광장 아고라를 폐쇄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학생들은 분명 대학에서 ‘학교의 주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아무런 결정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자신의’ 공간에 관련된 하나의 결정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자보를 붙이고 면담을 요청하고, 떼를 써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은 단순한 구성원보다도 주체성과 결정력이 희미한 존재가 되고 이 과정에서 서울대생들은 ‘주인’의 잘못된 의미를 체득해가게 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사건 외에도 서울대가 학생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사례는 너무도 많다. 하지만 이는 남몰래, 너무도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학교의 모든 사안을 심의·의결하는 평의원회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학교의 중대사를 결정해버린다. 학교의 주인이라는 우리는 이미 학교의 다른 주인이 정한 체제에 적응해가고 있으며 그런 서울대를 살아가며 우리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주인’ 개념에 물들어간다.

학교는 연구와 교육이 이뤄지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기도 하며, 학생들은 강의실뿐 아니라 학교 생활에서도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학생들이 서울대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주인’이라는 단어의 퇴색된 의미일 뿐이다. 국내 최고를 자처하는 대학이 학생들에게 ‘주인’의 바른 의미 하나도 가르칠 수 없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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