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맞이 퀴즈 하나. 헝가리안 랩소디, 플라멩코, 찌고이네르바이젠 등에서 공통적인 것은? 여러 공통점이 있겠으나 오늘의 정답은 ‘집시’다.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는 헝가리 집시의 민속선율을 바탕으로 한 피아노곡이며 플라멩코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발달한 집시 기원의 음악과 춤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사라사테의 찌고이네르바이젠은 ‘집시의 노래’라는 의미로 바이올린 명곡 중의 하나로 꼽힌다. ‘집시’라고 정답을 삼았지만 더 바람직한 정답은 ‘로마’일 것이다. ‘집시’라는 말은 유럽 사람들이 이들을 처음 접했을 때 이집트에서 온 것으로 오해해 붙여진 것으로 다소 경멸적인 뉘앙스를 풍긴다고 한다. 이들은 ‘집시’라는 말 대신 그들의 언어 ‘로마니’에서 사람, 인간의 뜻을 지닌 ‘로마(Roma)’라는 말을 사용해주기를 바란다.
인도 북서부 힌두스탄이 기원이라는 로마가 9세기 무렵 유럽에 등장한 이후 많은 유럽 예술가들은 그들의 음악과 춤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로마는 중세 영주의 용병으로, 연회의 악사로 대접받았으며, 농촌에 일손이 부족한 추수기에는 농사일을 거들면서 농민들의 환대를 받기도 했다. 한편 유랑민인 이들에게 향하는 부정적인 시선도 적지 않아 도둑질, 불결, 방탕 등의 꼬리표가 붙곤 했다. 로마의 도둑질에 관해서는 재밌는 전설이 전해져온다. 한 로마 노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행렬을 보고서 그의 처형을 막고자 못을 하나 훔쳐 멀리 내던졌다. 병사의 제지로 더 이상 못을 훔치지는 못했으나 예수의 한 제자로부터 신성한 행위로 인정받았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 두 발을 포개어 박음으로써 단지 세 개의 못만을 사용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로마의 도둑질은, 그리스도에게 그랬듯이, 물질과 부의 무게에 짓눌려 부질없는 근심에 쌓인 정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이들 유랑민을 정착·동화시키려는 여러 강제적인 시도들이 있었지만 로마 민족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꺾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나치들은 “유럽에서는 유대인과 집시들만이 피가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로마 민족까지도 절멸하고자 수십만명에 달하는 로마를 학살했다. 최근 프랑스 사르코지 정권이 로마를 추방하는 정책을 집행하자 이에 대한 찬반논란이 들끓고 있다. ‘톨레랑스’를 강조해온 프랑스에서 이런 퇴행적인 행태가 재현되는 것을 접하니, “문명이란 보다 경험이 많고 보다 현명해진 야만일 따름”이라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통찰이 실감 난다. 민족국가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세계 전체를 조국으로 삼고 살아가는 로마인들은 많은 이들이 이상 속에 간직해온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 인간이라는 뜻의 ‘로마’는 자신들 이외의 사람들을 ‘가드조’라고 부른다. 이들에게 ‘가드조’들은 무슨 의미인지 불어오는 바람에게 물어봐야겠다.
장준영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