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방송국의 한 시사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의도적 편집’ 논란이 뜨겁다.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을 탄 ‘탄핵찬성’ 집회장면에서 사회자는 “고등학교도 안 나온 여자가 국모로서의 자격이 있느냐”며 권영숙 여사의 자격론을 제기한다. 전임 대통령 부인들은 모 대학 출신이었다는 논거를 드는 것도 잊지 않는다. 네티즌의 비판여론이 들끓고 청와대에서도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 발언의 요지가 왜곡된 편집판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권 여사의 학력을 거론한 것은 노대통령이 모기업 전 경영인의 비리연루사실을 언급하면서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발언이 일종의 ‘언어적 살인’이라는 주장을 ‘예를 들어’ 설명했을 뿐이라는 해명이 있었고, 현장증언을 토대로 한 편파방송 주장이 이에 힘을 실어주었다.

 


논란이 한없이 증폭되자 방송사는 촬영 내용 전체를 공개했다. 하지만 원본의 여과없는 방송은 오히려 관련 논쟁에 불을 지피는 꼴이 돼 버렸다. 여론은 편파성 여부를 두고 박빙의 대결을 벌이고 있으며 방송사와 발언당사자 역시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공개된 영상에서 사회자는 노대통령의 치정을 비판하면서 노대통령의 발언이 부적절함을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는 단서를 붙이고 있다. 즉 사회자는 ‘만약’ 공개석상에서 영부인의 학력을 문제삼는 발언을 한다면 권 여사는 어떻게 받아들이겠냐며 마찬가지로 노대통령의 발언이 폭력적이었다는 논지를 펼친 셈이다. 그렇다면 부적절한 편집이 분명하다. 사회자 발언의 ‘요지’를 방영했어야 탄핵찬성 집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테고 나아가 탄핵 찬성 혹은 반대 여론이 도심의 광장에서 활기차게 개진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대중에게 정치참여의 ‘광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프로그램의 큰 맥락 또한 분명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문제의 발언에도 중대한 논리적 결함이 있다. 사회자는 청중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쳐 영부인 학력자질론을 비유를 위한 하나의 ‘가정’이 아닌 정치적 ‘주장’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학력자질론은 더 이상 받아들여질 수 없는 구시대적 논리이다. 더구나 노대통령의 발언은 엘리트층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정당한 진술이었지만, 저학력 영부인 부적격론은 부당한 주장이니만치 둘간에는 적절한 유비관계가 성립하지 않고 따라서 문제의 발언은 부적절한 ‘예시’이다.

 


30초의 편집장면은 국민의 정치참여를 위한 ‘물리적’ 광장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취지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지만 뜨거운 ‘토론과 논쟁’의 광장을 연 것만은 분명하다. 열린 광장 덕으로 언론은 ‘대의와 요지를 전달하는 편집’을 할 때만, 정치 발언자들은 ‘논리적 주장’을 펼쳐야만 정치적 의식이 만만치 않은 국민에게 인정받음을 배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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