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은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처용무, 영산재, 제주 칠머리당영등굿 등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 1주년을 맞는 날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무형문화유산은 명맥을 유지하는 데 여전히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이미 오래된 문제인 전수자의 생활고와 노령화뿐 아니라 무형문화재 외형 보존에 비해 그 안에 담긴 근본정신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무형문화유산에 담긴 근본정신과 그 원형을 계승하려는 새로운 움직임이 시도되고 있다.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기 위한 무형문화유산의 움직임을 만나보자.

무형문화재의 현실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문화재청에 등록된 문화재가 정부의 지원 아래 잘 보존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중요무형문화재는 체계적인 보호와 울타리 밖에 놓여있다.

국가가 보존해주겠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무형문화유산

무형문화재 125종목 중 27.2%에 달하는 34종목의 문화재는 보유자나 전수조교가 없다. 이는 종묘제례악, 거문고산조, 옹기장, 금속활자장, 한지장 등의 중요무형문화재들이 현 세대를 넘어가면 기록으로만 남아 다시 볼 수 없는 역사의 유물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시·도 무형문화재도 실상은 비슷하다. 현재 396종목 중 53종목에 해당하는 시·도무형문화재가 보유자 없이 그 이름만 등재돼 있다. 16개 지방자치단체 중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분야 전부에 보유자가 있는 곳은 부산광역시 단 한곳뿐이다. 인간문화재 188명의 평균 연령이 69.1세인 것을 고려하면 무형문화유산이 사라질 날은 30년이 채 남지 않은 것이다.

한편 이러한 무형문화유산의 현실이 무형문화재에 대한 지원 부족과 문화재 지정 체제의 불합리함에서 기인한다는 비판이 있다. 직접 무형문화재 유지와 전수에 시간을 들여야 해 다른 직업에 종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들은 많아야 월 130만원 수준인 지원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화재 관련 사업비 중 무형문화재 지원금은 5%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제대로 지원받기 어렵다. 인간문화재는 전수자, 이수자, 전수교육조교, 보유자의 4단계를 거쳐야 해 130만원의 지원금을 받는 보유자가 되려면 적어도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실제 중요무형문화재의 보유자가 되기 전 전수자가 받는 금액은 20만원에 불과하다.

최근 국새 제작 단장 선정 과정 중 일어난 금품 로비 논란처럼 보유자 심사 과정의 투명성 논란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은 “문화재 심사위원 선정이 불합리해 전공이 아닌 분야를 심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심지어 금전거래나 인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라고 밝혔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제주칠머리당영등굿(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김광빈 사무국장은 “대학에 과가 있는 경우에나 전수가 제대로 되지, 대부분은 연로한 사람들이 문화재의 명맥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다”며 “지원 문제뿐 아니라 국가나 관람자 모두 전수자가 소명을 다하도록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저 보존만 하면 된다고? 관심 부족을 부르는 몰이해

전문가들은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몰이해가 무형문화유산 특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게 하며 문화재 전수의 위기를 초래한다고 본다. 문화재청 김승국 문화재전문위원은 “각 나라의 문화에는 DNA와 같은 원형이 있다”며 “원형을 갖추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변화를 주거나 원래의 특질을 잊어버린 채 외형에만 집중하는 것은 우리 무형문화유산을 되레 지루하게 만들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 무형문화유산의 특질로 꼽히는 것은 춤, 소리, 연극, 놀이가 일체화된 융합형 예술이라는 점과 관객과의 소통을 꾀한다는 점이다. 서양 줄타기가 서커스로 불리는 기예 행위인데 반해 한국의 줄타기는 소리, 춤, 아니리, 삼현육각 등이 함께 공연돼 왔고 서양의 문화가 무대에서 발전해 왔다면 우리 문화는 마당과 터에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들어온 서양 문화는 우리 무형문화유산의 특질을 왜곡시켰다. 국악관현악단의 공연은 지휘자를 세우고 공연자가 관객과 분리되는 등 서양 오케스트라와 흡사한 형태로 변질됐다. 음역이 낮아 합주나 대형 무대에 적합하지 않은 전통 악기는 어울리지 않는 무대 위에서 떨림의 묘미조차 살리지 못하고 있다. 또 좁은 공간에서 관객과 얼굴을 마주하며 연주될 때 진가를 발휘하는 우리 악기는 너무 넓어진 무대 위에서 지루함을 없애보려 ‘캐논’이나 가요를 연주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보여주기식 공연이 관계자들의 의욕을 상실케 해 위기에 처한 문화재도 존재한다. 짚으로 만든 고에 타고 상대팀을 쓰러뜨리는 전투형 놀이인 광주칠석고싸움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33호)가 그러하다. 조경만 교수(목포대 문화인류학과)는 “행사나 발표회가 늘면서 위기에 처한 고싸움이 형식적이며 보여주기 식의 공연으로 그칠까 우려된다”며 “사람들과 몸을 부딪치고 겨루는 사이 신명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고싸움 놀이 특유의 현장성이 지워지지 않도록 보존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는 무형문화유산

중국 북경대에 재학 중인 한국 학생들이 창단한 동아리 ‘얼쑤 베이따’는 무조건적인 퓨전을 지양하고 무형문화유산이 가진 원형의 장점을 극대화한 사례다. 타악기로만 구성된 음악이 생소한 중국에서 사물놀이를 처음 선보였을 때 중국인들은 사물놀이를 그저 시끄러운 음악 정도로만 여겼다. 그러나 은유적이고 철학적인 표현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성격에 맞춰 네 가지 하늘의 소리를 의미하는 사물놀이의 연원을 설명하자 이내 사람들이 몰렸다. ‘얼쑤 베이따’의 이정현 회장은 “이제는 동아리에 중국학생들도 많아졌다”며 “사물놀이의 철학이 두 나라 학생들을 하나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무형문화유산에 대중성을 더하려는 시도도 있다. 지난 8월 전라남도 신안 비금도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뜀뛰기강강술래를 3D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촬영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비금도의 뜀뛰기강강술래는 남녀가 교차로 줄을 서 빠르게 뛰는 독특한 형태의 전통놀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연출을 맡은 진호림 PD는 “영화 「스텝업」처럼 3D는 강강술래의 율동성과 입체감을 담아내기에 좋은 형식”이라며 3D 기술을 무형문화재에 도입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뜀뛰기강강술래는 포크댄스와 같은 놀이문화로 전파될 수도 있고 아르헨티나 탱고처럼 세계적인 춤이 될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며 “강강술래를 장소의 한계를 넘어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한편 영진전문대학교 모션캡처센터에서는 18세기 후반 조선 무예를 총정리한 「무예도보통지」를 광학모션캡쳐장비를 통해 3D애니메이션으로 복원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중매체와 신기술의 활용은 무형문화유산을 우리에게 한걸음 가까워지게 했다.

내일도 무형문화유산이 우리 곁에 남아있으려면

서도소리(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보유자인 이은관 명창은 “전통이 살아남으려면 젊은 사람들이 전통을 새로운 방법으로 즐겁게 체험해야”한다고 말한다. 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강릉농악이나 전국 각 대학풍물패와 연계해 방학마다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농악을 가르치는 임실필봉농악 등은 젊은 이수자들이 많은 무형문화재로 손꼽힌다. 이처럼 일반인이나 학생을 대상으로 한 폭넓은 전통문화교육은 전통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의 층을 두텁게 할 방안이다. 토론·포럼 등을 통한 학술적인 담론 형성이나 축제 고안 역시 새로운 전수 방안을 모색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작년 유네스코 등재를 기념하며 열린 처용무(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세미나에서 이종숙 박사(용인대 무용학과)는 처용무를 이용한 문화 콘텐츠 개발 방향을 주제로 처용이 서양의 마술사 캐릭터를 대체할 요소가 많아 세계 청소년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음을 발표했다. 또 지난 10일에는 남사당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세미나가 열려 남사당놀이 학습체험 모형 개발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남사당놀이는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가 10회를 맞이할 정도로 무형문화유산 보존의 좋은 사례로 꼽힌다. 전통운동인 씨름과 유사한 일본 스모, 몽고의 브흐, 스위스의 쉬빙겔 등을 초청 해 맞대결을 펼쳤던 충주세계무술축제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어낸 새로운 예다.

조경만 교수는 “ 것을 보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키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더욱 중요하다”며 “형식적인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종합예술성과 소통가능성 등 무형문화유산의 기본적인 의미와 미학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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