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성] 마르크스 경제학 현재적 의미의 재조명

독일·일본 등 마르크스이론 재조명 관심높지만 국내는 비주류에 머물러
마르크스이론이 현 금융위기의 실효성 있는 대안 될지 논의 필요해

2008년 금융 위기 후 마르크스 사상은 해외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독일의 많은 대학에서는 ‘마르크스 경제학’ 수강 인원이 급증했고, 일본의 ‘공산당’ 당원은 1만명 이상 늘었다. 독일을 중심으로 프랑스·러시아 등지의 학자들이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을 편찬하는 『MEGA』작업도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중앙대서 열린 ‘MEGA’ 학술대회에 모인 국내외 연구자들은 비공식 자료를 망라한 문헌 편찬을 통해 미완성이었던 마르크스 이론 논의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지난달에야 『자본』 원전이 완역되는 등 마르크스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대학신문』은 ‘비주류’로 여겨지는 국내 마르크스 경제학의 현재적 의미를 짚어 봤다.

그래픽: 한혜영 기자 sweetdreamzz@snu.kr

















‘마이너’ 영역에 속한  국내 마르크스 연구


20여년 간 마르크스 경제학을 연구해 온 강신준 교수(동아대 경제학과)가 지난달 『자본』 독일어 원전을 완역했다. 최갑수 교수(서양사학과)는 “기존에 널리 읽히던 김수행 교수의 책은 영어판을 중역해 원전의 미묘한 뜻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이번 독일어본 완역으로 정확한 의미가 담긴 『자본』 텍스트가 확보됐다”고 평했다.

그럼에도 서울대 경제학부에 유일한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였던 김수행 교수의 퇴임 후 비주류 경제학 전공자가 전무한 실정은 국내 마르크스 연구가 여전히 ‘마이너’ 영역임을 보여주는 예다. 강남훈 교수(한신대 경제학과)는 “국내 경제학계는 주류 경제학만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비주류 경제학을 개방적으로 검토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역사적 배경도 한 원인이다. 강신준 교수는 “공산주의 이론의 토대로 여겨지던 마르크시즘은 소련 몰락 후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됐다”고 말했다. 

이윤의 원천, 자본이냐 노동이냐

오늘날 주류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강조한 슘페터 사상을 내세워 ‘창조적’ 기술과 자본으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김신행 교수(경제학부)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기술 혁신과 시장의 ‘자기수정적(self-correcting)’ 기능을 신뢰하므로 경기 변동 구조에선 공황도 자연스러운 경제 현상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는 노동에 의해 이윤이 발생한다고 인식한다.  『자본』은 노동자가 가치를 만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이윤대신 ‘잉여가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주류 경제학과는 반대로 마르크스 경제학자는 자본과 기술의 비중이 늘고 노동의 비중이 줄어들수록 사회의 전체 이윤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강남훈 교수는 “신기술 투자로 발생하는 ‘초과 이윤’은 일시적일 뿐, 다른 생산자가 동일 기술을 확보하면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에서 공황의 메커니즘을 분석할 단초를 얻을 수 있다.  

왜 다시 ‘마르크스’인가

지금까지 마르크스 경제학은 경제 위기를 설명하는 데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강신준 교수는 “자본주의 내에 케인스라는 ‘구원투수’가 있어 1929년 대공황은 주류 경제학의 논리로 극복이 가능한 듯 했다”고 말한다. 케인스 경제학은 이후 30여년 간 주류 경제학의 지위를 점했고,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위기 후에는 신자유주의가 주류로 부상했다.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의 적정 정도에 대해 견해 차가 있지만 양자 모두 사적 소유를 인정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의 논리로 마르크스 경제학은 설 자리가 없는듯 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하며 마르크스 경제학의 논리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자본』 3권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에 의한 공황 메커니즘이 이번 위기를 완벽히 설명한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김성구 교수(한신대 국제경제학과)는 “자본주의 경제구조에 내재한 이윤율 저하 경향이 실물 경제의 투자 가치 하락을 야기하고 이는 다시 화폐 경제 영역의 투기를 부른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번 금융위기를 초래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는 이러한 공황 메커니즘이 주택의 과잉 공급과 맞물려 투자 은행들이 앞다퉈 주택 담보 대출을 시행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위기 해결의 단서로 금융시장이 지닌 ‘공공성’ 개념을 도입한다. 김신행 교수는 “금융 시장과 은행을 적절한 수준으로 규제하는 게 필요하다”며 “국내에서 2007년 확대된 DTI 규제도 그러한 정책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반면 강신준 교수는 이미 마르크스가 150여년 전 금융 상품의 ‘기생성’을 파악해 금융 위기에 대한 방안을 제시했다고 강조한다. 그는 “금융은 원 소득이 있어야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기생적 성격을 지닌다”며 “기생 소득이 원 소득을 잠식하지 않도록 규제해야 한다고 역설한 학자는 마르크스뿐”이라고 단언했다.

마르크스 연구자들은 대공황 극복에 일조했던 케인스 경제학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김성구 교수는 “주류 케인지언들은 과잉생산에 따른 수요부족만을 공황 원인으로 들며 유효수요 창출만 언급했을뿐 자본주의의 구조적 개혁은 부정해, 결국 임시방편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고 말한다. 김 교수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사회화’ 개념으로 이는 생산과 소비가 사회적 교환에 의해 매개되지만 사적 소유는 그대로 유지되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해결책이 된다. 강신준 교수 역시 “사적 소유를 전적으로 인정하게 되면 이를 담보로 한 금융·파생 상품 투기가 무분별해지므로 사회화를 도입해 공적 소유를 통한 화폐 경제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공적 소유를 언급하면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를 떠올리지만 실은 오늘날 북유럽 국가들처럼 경제의 민주화를 인정하면서도 국가의 소유 영역을 확보해 복지를 구현하는 게 대표적인 사회화”라고 말했다. 

마르크스 ‘제대로’ 받아들이기

마르크스 이론이 현 경제 위기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될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홍기현 교수(경제학부)는 “150년전 마르크스의 이론은 현대 경제 문제를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하지만 강남훈 교수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개방적으로 수용하고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를 학문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오는 일이다. 최갑수 교수는 “어느 학문이든 비판 이론과 주류 이론이 끊임없이 서로의 옳고 그름을 검증하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무작정 마르크스이론을 사장된 것으로 단정 짓기 전에 균형잡힌 시각으로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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