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세계번역가대회

해마다 권위 있는 문학상들이 국내 작가들을 비껴갔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한국어의 미묘한 어감을 살려 국내 작품을 해외에 제대로 소개할 수 있는 번역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양질의 번역에 대한 고민은 어느 나라에서든 번역가라면 누구나 직면하는 문제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고 한국문학 번역의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한 제4회 세계번역가대회(대회)가 지난 13일(월)부터 이틀간 ‘번역의 진화’를 주제로 코엑스 컨퍼런스 홀에서 열렸다.

김화영 명예교수(고려대 불어불문학과)가 36년간의 번역 인생을 회고하는 기조연설로 대회가 시작됐다. 그는 23년간의 작업 끝에 한국 최초로 정식 번역권을 획득한 『카뮈 전집』 20권을 올해 완간했다. 번역의 본질을 ‘타자와의 소통’으로 정의한 그는 “텍스트를 충분히 즐기고 이해하는 과정이 번역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번역가와 작가의 만남’ 분과는 국내 번역가들의 번역 스타일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오정희 작가의 소설 『새』를 번역한 정은진 번역가는 “소설의 아름다운 문체를 살리기 위해 의성어·의태어, 이미지 등을 그대로 살리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한편 조경란 작가의 『혀』를 번역한 김지영 번역가는 아직 한국 문학이 생소한 영미권 출판 시장 개척에 중점을 뒀다. 그는 “영어식 표현의 묘미를 살리려 번역 과정에서 긴 문장을 짧게 쪼개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고백했다.

이튿날에는 세계 번역가들을 만나는 자리가 마련됐다. ‘감동 번역의 실제’ 분과에서는 오르한 파묵, 오에 겐자부로, 가오싱젠 등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을 각각 전문적으로 번역해 이름을 알린 외국 번역가들이 자신의 노하우를 소개했다.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번역해 온 아폴리나리아 아브루티나는 “성공적 번역가는 곧 훌륭한 작가”라며 “완벽한 모국어 지식과 원작자의 의도를 소환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해석의 소지로 번역이 난해하기로 소문난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의 전문 번역가인 노라 비리히는 “특정한 번역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에 따라 접근 방식을 달리한다”고 답했다.

번역가들에게 더 나은 제도적 환경을 모색하는 시도도 이어졌다. ‘번역지원기관의 역할과 성과’ 분과에서는 해외의 번역 지원제도 현황이 분석됐다. 스페인 문화부 소속 하비에르 빠스꾸알은 스페인 문학의 해외전파를 목적으로 1984년부터 실시된 ‘번역지원금제도’를 소개했다. 번역을 단순히 언어전환이 아닌 작품의 재창조로 여기는 인식이 있어 가능했던 이 제도는 탄탄한 번역료 지원으로 실력 있는 번역가를 장려한다.

참석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정은진 번역가는 “작품이 출간되면 번역가는 작품에서 자취를 감추는 것이 관례여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며 “이번 대회는 번역가와 원작자, 독자와의 만남이 주선돼 소중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대회 실무를 맡았던 김경연 직원(한국문학번역원 정보관리팀)도 “번역 기술을 조명했을뿐 아니라 국내외 저명 번역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미 있었다”고 평했다. 문학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질 좋은 번역’의 개념과 위상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더 나은 번역을 위한 번역가들의 고민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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