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서울대人(in) 연구회

학제적 연구로 인간·환경 관계 탐구
발전 지향적 사고방식 바로잡고
주변의 ‘장소’ 고려한 자연관으로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 재조명해야

최근 호평을 받은 다큐멘터리 「땅의 여자들」엔 귀농해서 흙과 함께 당차게 살아가는 세 여인의 삶이 담겨있다. 관객들은 자연과 깊은 교감을 나누는 이들에게서 경건함을 느낀다. ‘생태문화연구회’는 이처럼 인간과 자연의 교감에 주목해왔다.

‘생태문화연구회’는 문학의 관점에서 환경문제를 탐구하는 ‘문학과 환경 학회’에서 갈라져나왔다. 2006년 결성된 이후 매년 열 차례의 연구모임을 가져온 ‘생태문화연구회’는 생태학과 문화에 대한 통합적 시각을 확립해왔다. 처음 모임을 만든 신문수 교수(영어교육과)는 “환경과 인간의 관계는 문학, 윤리학, 생태환경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제적 연구를 통해 총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회는 학자들 외에 환경 문제에 관심이 깊은 출판계 종사자나 언론인 등도 참여한다.

연구회에는 현재의 왜곡된 자연관을 바로잡고 인간에게 자연이란 ‘공간’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한다. 근대적 인간은 자아와 환경을 분리한 데카르트적 자아관에 영향을 받았고, 이는 시·공간 중 ‘시간’에 초점을 맞춰 빠른 이동과 생산을 추구하는 발전지향적 사고방식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낳은 무분별한 개발은 지구 온난화 등 심각한 환경 위기를 초래했다. ‘생태문화연구회’의 창립 멤버인 김원중 교수(성균관대 영문과)는 “이제는 시간 위주의 사고에서 벗어나 주변의 ‘공간’과 ‘장소’를 고려한 자연관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을 인간의 거처인 ‘공간’으로 바라보고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재조명하는 것이다. 경관(land-scape) 개념의 변천, ‘고향’이 인간에게 의미하는 바, 마을 형성 과정에서 숲의 역할 등 연구회가 다뤄온 주제는 이러한 넓은 의미의 ‘공간’ 인식을 짚어보는 예다.

연구회는 지난해 ‘자연, 경관, 생태주의’라는 주제로 관련 논문 및 저서에 대해 토론하고 관련 지역을 탐방했다. 예를 들어 이들은 30년대 시인 백석의 작품세계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살폈다. 고형진 교수(고려대 국어교육과)는 “이동수단이 열악한 시대적 조건에도 백석은 전국을 여행하며 독특한 지역색을 발견하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시에 담았다”고 말했다. ‘산뽕잎에 빗방울이 치다 멧비둘기가 난다’는 구절로 시작해 풍경을 담백하게 묘사한 백석의 시 ‘산비’는 삼라만상이 연결됐다는 전일적 자연관을 나타낸다. 또 연구회는 김정희 교수(서양화과)가 그의 논문 「복원된 청계천과 그 후」와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에서 청계천의 전후를 비교한 발표를 듣고 함께 청계천을 답사했다. 김 교수는 “복개된 청계천은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투영됐을 뿐 공간적 개연성 없는 설치미술로 가득해 진정한 문화공간이 아니다”며 소설에서처럼 서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던 옛 청계천을 더이상 볼 수 없음에 안타까워했다. 한편 지난 7월에는 연구회원들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미국의 자연관 변천과 생태의식』을 출간했다. 신문수 교수는 “광활한 자연을 고유한 정체성으로 내세우던 미국이 어떻게 세계적 환경 위기의 주범이 됐는지 살피고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려 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수필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대표작 『월든』은 미국 생태적 사유의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자연이라는 근원적 공간에서 “삶의 본질적 사실들을 직면”하려 숲으로 들어가 손수 28달러짜리 오두막집을 짓고 살았다. ‘생태문화연구회’는 생태문화라는 ‘오두막집’을 짓고 삶의 본질에 직면하려 한다. 그 오두막집은 값을 따질 수 없는 생태적 사유의 고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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