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거장, 거장을 만나다

2010년은 예술계에 유난히 의미 있는 해다. 쇼팽과 슈만은 탄생 200주년을, 히치콕과 손드하임은 각각 타계 30주년과 탄생 80주년을 맞이했다. 예술계의 거장인 이들의 사상은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공통분모를 낳기도, 첨예한 대립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연재 ‘거장, 거장을 만나다’에서는 영국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1899~1980)의 「싸이코」(1960)와 미국 뮤지컬 작곡가이자 기획가인 스티븐 손드하임(1930~)의 작품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스위니 토드)」(1979)를 살펴보며 각 분야에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두 거장의 접점을 더듬어 본다.

알프레드 히치콕 : 영국 출생. 자막 디자인, 미술감독, 시나리오 작가 등을 거쳐 독일 뮌헨에서 찍은 「쾌락의 정원」(1925)으로 감독 데뷔. 1939년 할리우드로 초청받기 전까지 심리적인 불안감을 교묘하게 유도하는 독자적인 묘사방법을 확립해 ‘서스펜스의 천재’로 불렸다. 「레베카」(1940)를 시작으로 「다이얼M을 돌려라」(1954), 「싸이코」 등을 만들며 스릴러라는 장르를 확립했다.

영화  「싸이코」: 마리온은 자신이 다니는 회사 사장이 은행에 입금하라고 맡긴 현금 4만달러를 챙겨 차를 몰고 도주한다. 도주하던 중 그녀는 심한 비를 피하기 위해 도로변에 있는 낡은 모텔에 들어선다. 모텔의 주인 노먼 베이츠의 도움으로 빵과 우유를 먹고 방으로 돌아간 그녀는 샤워를 하던 중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녀의 시체를 발견한 노먼 베이츠는 충격에 휩싸인 채 시체를 황급히 치우는데….

스티븐 손드하임 : 미국 출생. 작곡가이자 뮤지컬 기획자로 뮤지컬 「토요일 밤」(1954)으로 데뷔. 그의 작품들은 뮤지컬이 단순한 유흥이 아닌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음악 역시 대본의 일부여야 한다고 믿었던 그는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뮤지컬에 도입해 기존 뮤지컬의 공식들을 깨뜨려 왔다. 대표작은 「스위니 토드」, 「인 투 더 우즈」(1987), 「어쌔씬」(2005) 등이 있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 이발사 벤자민 바커는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를 탐한 악랄한 터핀 판사 때문에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다. 15년 후 아내와 딸을 되찾고자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살인마 스위니 토드로 거듭나고 이발소 아래층 러빗부인과 함께 잔혹한 살해를 시작한다. 그러나 복수에 눈이 먼 그는 아내를 알아보지 못해 그녀를 죽이게 되고 슬픔과 분노에 휩싸인 그는 러빗부인을 죽인 뒤 자신 역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픽: 유다예 기자 dada@snu.kr

스티븐 손드하임(손드하임): 올해는 선배님의 대표작 「싸이코」가 개봉한 지 50주년을 맞는 해더군요. 젊은 시절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나 한번 더 보게 됐습니다. 여전히 대단한 영화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히치콕): 대단하긴, 요즘 공포영화들과 비교하면 그렇지도 않아. 영화 개봉 당시 사람들을 졸도하게 할 정도로 무섭다고 평가받은 욕실 살인 장면만 봐도 그렇지. 자네가 묘사하는 잔혹함이나 기괴함에 비하면 오히려 단정한 편이야.

손드하임: 겸손한 말씀 마세요. 「싸이코」만큼 후세에 영향을 준 작품도 드물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주인공이 절대 죽지 않는다는 통념을 깬 영화의 극적 반전이나 45초 동안 무려 78개의 쇼트로 표현한 욕실 살인 장면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죠. 특히 제가 감동받은 것은 영화의 탁월한 음악적 효과입니다. 칼에 찔리는 소리나 비명 등의 선명한 효과음과 날카로운 바이올린 소리의 배경음이 극대화한 공포는 최근 영화들과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죠.

히치콕: 사실 싸이코의 음악적 효과는 나도 매우 만족스러웠지. 기분이 좋아 음악감독을 맡았던 버나드 허먼에게 돈을 2배로 줬어. 자네도 작품에서 음악을 가장 중요시 한다고 들었네만.

손드하임: 저의 작품에 있어 음악은 배경이 아닌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음악은 뮤지컬 대본의 일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야기 속에 유연하게 녹아드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죠.

히치콕: 역시 그랬군.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2막 오프닝의 ‘God that's good’을 들으며 치밀하게 계산된 자네의 음악에 감탄했었지. 러빗부인과 토비는 물론 파이집 손님으로 나온 20명의 코러스들이 나오는 아주 복잡한 장면이었는데 각자의 파트가 놀랍도록 잘 어우러져 있더군. 두 주연이 빠르게 노래를 주고받는 모습은 물론 광적인 손님들이 맥주잔으로 테이블을 치는 몸짓과 박자 하나하나까지 노래에 녹여낸 세심함이 돋보였네.

손드하임: 제 뮤지컬을 보셨군요! 영광입니다. 사실 「스위니 토드」는 선배님 영화의 음악을 담당했던 버나드 허먼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배경음악을 만든 것이거든요.

히치콕: 산업혁명 초기의 굶주린 영국을 배경으로 인간을 도구로 대하는 사회적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더군. 발랄하고 즐거운 분위기의 사랑 이야기로 즐비했던 뮤지컬 형식을 파괴하고 피비린내 나는 슬래셔(Slasher) 장르를 도입한 자네의 대표작 아닌가.  특히 주인공인 스위니 토드가 면도를 하러 온 고위층 간부들의 목을 거침없이 잘라내고 그들을 조각내 고기파이를 만들어 파는 장면이나, “항상 위엣 놈들이 아랫놈을 먹어왔지만 이젠 아랫놈들이 위엣 놈을 먹을 차례야”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사회에 대한 지독한 증오까지 느껴졌지.

손드하임: 복수에 이성을 잃은 스위니 토드를 통해 당시 사회에 대한 염세적 시선을 담아내고자 했었죠. 그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기존 뮤지컬의 주제들과 달랐기에 혹평을 하는 관객들도 많았지만 말입니다.

히치콕: 음, 나는 별로 불편하지 않았네. 지독한 염세주의 속에서도 특유의 유머감각이 돋보여 오히려 더 마음에 들던걸. 자네 작품들은 전부 그래.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라도 유머를 잃지 않지. 극 중에서 가장 서정적인 노래 ‘조안나’가 울려 퍼지는 동안 스위니 토드의 잔혹한 살해 장면이 함께 펼쳐지는 모습이란! 놀라운 블랙 코미디 아닌가.

손드하임: 유머하면 선배님도 빼놓을 수 없죠. 선배님은 작품에 직접 출현하시기로 유명하셨잖습니까. 「싸이코」에서 자넷 리가 사무실에 출근하는 장면 중 창밖의 카우보이 모자를 쓴 남자가 선배님이라지요?
히치콕: 이거 들켰군, 하하. 대중이 내 작품을 좀 더 친근하게 느끼길 바랐기 때문이지. 대중성을 확보하는 것은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이니까. 자네 작품은 어떠한가? 대중을 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가?

손드하임: 「스위니 토드」가 잔인함과 기괴함으로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은 바 있죠. 최근에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니까요.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뮤지컬 감독이라고  평가 받기도 하지만 실제로 저는 작품의 대중성을 그리 고려하는 편은 아닙니다. 대중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예술성이 죽는 것을 원치 않았으니까요. 특히 극적인 음악이 너무 쉬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마치 결말이 예상되는 드라마와도 같죠. 끊임없는 불협화음과 변박을 통해 관객들이 예상하는 음악보다 한 걸음 앞서가려 노력했습니다.

히치콕: 예술성이 죽는다라…. 틀린 말은 아니네. 하지만 대중에게서 먼 작품은 진정한 대작이라 할 수 없지. 자네와 달리 내게 대중성은 작품의 핵심적인 요소였네. 자본주의의 논리가 할리우드를 잠식하고 있던 당시, 상업성은 영화가 갖춰야 할 필수 조건이었으니까. 내가 선택한 건 그 상업성 속에 나만의 색깔을 입히는 것이었어. 자네가 살아가는 시대도 다르지 않다고 보네. 자네의 작품이 돋보이는 이유도 여기 있지 않을까?

손드하임: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대중이 없다면 예술이 존재할 이유도 사라지겠죠. 상업적인 현실 속에서도 대중성을 잃지 않으며  작가만의 색깔을 통해 예술성을 얻는 것 역시 중요한 것 같습니다. 결국 선배님과 저의 작품은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끊임없는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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