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폭력 실태와 인권문제를 다룬 「제4회 여성인권영화제」

연일 여성폭력 피해자들의 소식이 신문 지면을 채워 나간다. 최근에는 몽골 이주 여성이 가정 폭력에 의해 죽음에 이른 사건이 발생했다. 여성폭력에 대한 문제는 이미 오래 전 부터 제기돼 왔지만 사회에는 여전히 여성을 향한 폭력이 만연하다. 점차 여성의 일상까지 파고 드는 폭력은 사회적 약자로 낙인찍힌 여성들의 삶을 더욱 옥죄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오는 6일(수)부터 9일까지 여성인권영화제 ‘피움’(fiwom)은  종로구에 위치한 씨네코드 선재에서 그 네번째 발걸음을 뗀다. 여성들이 겪는 폭력을 방관할 수 없었던 이들은 2006년 제1회 여성인권영화제를 시작으로 인권과는 유리된 삶을 살아온 여성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왔다. 2년만에 재개된 이번 영화제 역시 13개국에서 온 35편의 영화들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세상을 향한 걸음을 내딛는 여성들과 목소리를 함께 하고자 한다.

다큐멘터리 「버진」(감독: 타헤레 하싼자데, 2009)

‘시작했으니 두려움 없이’라는 슬로건으로 나흘간 열리는 영화제는 ‘현실’, ‘생존’, ‘치유’라는 세가지 섹션에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들의 현실을 드러낸다. 첫번째 섹션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에서는 아직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여성폭력의 현실을 스크린 위에 펼쳐낸다. 여러 다큐멘터리 중 「버진」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악습을 수용해야 하는 이란 여성들의 삶을 조명한다. 결혼 전 처녀성 증명서를 만들어야 하는 이란 여성들의 삶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는 렌즈를 돌려 여전히 암묵적으로 처녀성이 강요되는 한국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다.

한편 폭력과 억압 속에서 더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며 행동을 시작한 이들을 주목한 두번째 섹션은 여성들의 ‘일상과 투쟁의 나날들’을 보여준다.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는 성폭력의 아픈 과거에도 무너지지 않고 하루 하루를 버텨낸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모임인 ‘작은 말하기’에는 성폭력 피해자로서 7년째 성폭력을 연구하며 전문가로 거듭난 보짱, 성폭력의 상처를 이겨내고 성폭력 예방 강사로 활동하는 한새 등 지우고 싶은 기억을 딛고 일어선 그녀들의 목소리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어지는 세번째 섹션 ‘그대 마음과 만나, 피움’에서는 연대와 소통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현존하는 법률과 치안 제도에 기대지 않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스스로를 위한 법정을 여는 인도 구자라트 지역의 여성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정의를 찾아서」는 공정하다고 여겨지는 법이 여성들에게 오히려 속박이 되는 상황과 허울뿐인 제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다큐멘터리 「정의를 찾아서」(다니엘 버크홀츠, 2008)
사진제공: 여성인권영화제 피움

관객들은 스크린 밖에서도 영화로 만났던 여성 폭력과 인권 문제를 되새길 수 있다. 영화 상영 후에 관객과 감독이 직접 만나 낙태, 데이트 폭력 등 여성폭력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도 마련된다. 또 영화제 기간 동안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그린 그림 17점이 전시되며 ‘멈춘 그녀의 신발’이라는 이름의 행사에서는 최근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여성들을 추모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여성인권영화제 최유연 홍보팀장(한국여성의전화)은 “여성폭력과 인권이란 주제가 어둡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영화제를 통해 이것이 멀리 있지 않은 현실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폭력과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침묵했던 여성들은 이제 스크린을 통해 현실을 적극적으로 고발하기 시작했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침묵을 소리치기 ‘시작한’ 이들의 출발에 ‘두려움 없이’ 함께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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