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에 지쳐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돌아가는 캠퍼스의 하루하루. 그러나 그 속에서도 자신의 전공에 구애 받지 않으며 이색적인 활동들을 펼치는 이들이 있다. 자신만의 가치를 특별한 활동들로 실천하는 이들의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

도전동아리 프로젝트 팀 독도레이서 이한나(서양화과·06)

세계를 달리며 그려낸 소중한 삶의 지도

열의에 찬 눈빛에선 삶의 청사진을 그려낸 이의 확신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 눈빛은 여느 대학생과는 사뭇 다른 듯하다. 도전동아리 GT(Global Trailblazer)의 프로젝트 팀인 ‘독도레이서’ 이한나씨(서양화과·06)는 독도를 알리는데 20대의 한 해를 고스란히 바쳤다. 지난 8월 세계 일주를 끝낸 뒤 숨을 고르며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하는 그를 만났다.

독도레이서 팀원들은 전 세계 30개 도시를 돌며 각종 활동들을 통해 한국과 독도를 알렸다. 이들은 국외 대학에서 독도 세미나를 열거나 국제 마라톤 대회에 독도가 쓰인 현수막을 들고 달리기도 했다. 또 한국에서 배워간 판소리, 풍물놀이, 상모돌리기 등을 공연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힘들 때도 많았지만 서로 다른 이들도 문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음을 느낀 소중한 체험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일식집에서 롤을 말고 지붕 청소, 서빙을 하며 부족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안 졸업과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며 불안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들이 전공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해도 삶에서 더없이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확신한다”며 “20대인 지금 삶의 여러 현장들을 경험하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고 덧붙였다.

케냐 나이로비에서의 시간은 그가 무엇을 할 지 깨닫게 해준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빈민들이 먹을 것을 구하려고 쓰레기장 주변에 모여 만든 마을에 한국인 목사가 합창단을 만들었다. 투어 공연과 장학금을 통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지라니 합창단’이 그것이다. 이들의 공연에 전공을 살려 무대 미술을 맡았던 그는 당시의 경험을 통해 “내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행은 의자 위에 앉아 있을 때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나를 바라보게 한다”고 말하는 그의 2년에는 이력서의 여백이 두려워 주춤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함께 한 팀원들, 여행길에서 만난 외교관, 빈민가 아이들, 봉사자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한 기억만이 가득할 뿐이다. “긴 여행을 마친 뒤 남이 만든 틀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닌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하는 그의 내일은 또 다른 도전들로 빼곡히 채워져 나갈 것이다.

락 밴드 나비어스톡스 멤버 고형석 교수(전기공학부)

연구실에 울려 퍼지는 설레는 기타의 선율

적막한 분위기가 감도는 자동화시스템연구소(133동) 5층. 하지만 복도 끝의 한 연구실에선 부드러운 기타 선율과 노래 소리가 흘러나온다. 연구실 한 귀퉁이에 어쿠스틱 기타를 세워두고 연구에 지칠 때 마다 기타를 연주하는 이 연구실의 주인은 바로 락 밴드 나비어스톡스(Navier-Stokes)의 멤버 고형석 교수다.
고 교수와 기타의 인연은 대학교 4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시절 콩쿨에 출전하고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오케스트라에 참여할 정도로 바이올린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무작정 기타를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타를 배운 뒤에도 취미로만 기타를 연주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기타리스트가 된 것은 2005년 10월 밴드를 결성하면서부터다. 나비어스톡스는 컴퓨터 그래픽스를 연구하는 국내 석학 7명이 각자의 소리를 모아 하나의 음악을 만들고자 결성한 밴드로 고 교수는 이 밴드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다. 교수들이 모인 밴드인 만큼 이들의 주 활동 무대는 딱딱하고 지루해지기 쉬운 학술 행사다. 고 교수는 “작년 한 해 동안 학술 행사장에서 6번의 크고 작은 공연을 치뤘다”며 “제주도 학술행사에서 딱딱한 행사의 분위기를 풀고 바다를 바라보며 노래하던 순간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음악이 그에게 지니는 의미를 묻자 고 교수는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은 공연을 앞둔 설렘과 떨림을 누르고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을 때의 희열”이라며 미소 짓는다.
밴드에서 화려한 기타리스트와 보컬을 맡고 있지만 연구실에서 그는 진지한 학자이자 연구자이다. 물리학을 기반으로 자연현상을 재현한 유체 시뮬레이션을 연구하는 그는  옷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재현하는 의상 시뮬레이션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꼽힌다.
국내외에서 연구 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고 교수의 음악 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나비어스톡스는 올 연말 세계 최대 규모의 컴퓨터 그래픽스 국제 회의 ‘시그래프 아시아’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공연을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밴드로 나아가고 싶다”는 고 교수. 컴퓨터 그래픽스 연구자와 기타리스트라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두 길의 공존은 묘한 어울림을 자아내며 더욱 특별한 기타 선율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자원봉사 밴드 컴패션밴드 리더 남좌민 교수(화학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실천의 목소리

남좌민 교수의 이력을 들으면 적어도 두 번은 놀라게 된다. 첫 번째는 젊은 나이에도 차곡차곡 쌓아온 그의 연구 업적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가 굶주린 어린이들을 위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는 ‘컴패션밴드’의 일원이라는 점 때문이다.

2006년 배우 차인표씨가 만든 ‘컴패션밴드’는 배우, 가수, 사진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120여명이 모여 만든 자원봉사 밴드다. PD인 친구의 소개로 이 밴드와 인연이 닿은 그는 처음 부담감에 밴드 활동을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같이하는 사람들이 따뜻하고 함께 품은 목적이 좋아 곧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그와 함께 하게 된 컴패션밴드는 각자가 지닌 재능으로 세계 곳곳에서 가난으로부터 고통 받는 아이들을 위한 노래와 공연을 이어왔다.

지난해 그는 ‘컴패션밴드’의 리더가 됐다. 가수 심태윤씨와 공동 리더를 맡게 된 그는 밴드 전체의 방향성과 굵직한 사안들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이러한 활동 가운데서도 작년 6월 성황리에 마친 100회 기념공연이나 11월 발매한 첫 자선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준비한 과정들은 그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 됐다. 그는 이 활동을 통해 “다른 이들의 마음을 바라보고 서로를 진심으로 대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의 삶이 특별한 것은 단순히 화학부 교수가 밴드 활동을 한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젊은 과학자들에게만 주어지는 미국 화학회의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촉망받는 연구자이기도 하며 작년 말에는 신종플루와 에이즈 등의 검사를 몇 시간 만에 시행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그 성과를 인정받기도 했다.

서로 다른 두 분야의 일을 어떻게 완벽히 해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모든 일에 우선 순위를 정해 두면 된다”는 다소 교과서적인 대답을 꺼내놓는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를 부탁하자 그는 “한 아이의 눈물, 한 사람의 투쟁 등 자신을 행동으로 이끈 이유를 마음 깊이 새긴 채 살아가야 한다”며  깊이 있는 한마디를 던진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가슴에 간직하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재능 뒤편에 감춰놓은 그만의 흔들리지 않는 소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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