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예술단체 효율성과 전문성 강화 명목으로 추진되는 국립극장 법인화
단원 탄압과 정부 통제 체제 강화로 자율성과 공공성 훼손 논란 휩싸여

지난달 1일 국립극장 60주년 기념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이 서울 각지에서 열렸다. 하지만 그 자리에 국립극장의 60년을 동고동락했던 국립극장 소속 단원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법인화 추진을 둘러싼 국립극장과의 갈등으로 단원들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1999년 국립발레단, 오페라단, 합창단을 법인화한 바 있는 국립극장은 지난 6월 국립극단 역시 법인화를 단행했다.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산하단체인 국립창극단, 무용단, 관현악단에 성과연봉제, 오디션 평가제를 도입해 ‘법인화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낳고 있는 상황이다. 법인화를 두고 노사갈등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서 임연철 국립극장장이 법인화 가능성을 직접 언급해 이번 논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사진제공: 국립극장 예술노조

국립극장에 불어온 법인화 바람

국립극장 산하 단체였던 국립극단의 법인화는 현 정부 문화정책의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예술의 창조역량 강화를 위한 중점 사업으로 국·공립 예술단체의 법인화를 꼽았고 2009년 경기도립예술단을, 올해 6월엔 국립극단을 차례로 법인화했다.

문체부는 그동안 “국·공립 예술단체의 법인화는 국가정책의 통제 아래에 있던 국·공립 예술단체를 독립시켜 예술의 자율성을 확보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의 권영태 사무관 역시 “극장장의 통제와 정부 정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이전에 비해 법인화 후에는 작품에 대한 예술 감독의 권한이 강화돼 더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2005년 법인화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경우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을 앞세워 기존의 방만한 경영에서 벗어났고 2년만에 자체 공연수익이 2400% 증가하기도 했다. 또 전국 1위 오케스트라로 뽑히는 등 공연의 양적, 질적 성장을 이뤄내 법인화를 통한 예술의 전문성 강화가 일정 부분 실현될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예술의 자율성 확보와 전문성 강화를 위한 법인화?

그러나 국립극단을 비롯한 현 정부의 법인화 정책이 예술의 자율성 확보와 전문성 강화라는 목표에 적합한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예술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문체부의 설명과 달리 법인화 이후에도 예술단체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법인화된 예술단체들은 재정 자립 방안이 없어 여전히 정부의 재정 지원금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예술 감독의 임명권 역시 정부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공공노조)의 박영흠 정책부장은 “현재와 같은 법인화 방식은 기존의 정부가 통제하던 운영체제에 예술 감독 체제를 추가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속 예술가들을 함부로 해고할 수 없었던 이전 체제와 달리 예술 감독이 소속 예술가들의 고용·해고를 결정하게 되면서 예술 감독을 임명하는 정부의 권한이 강화됐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예술 감독이 너무 많은 권한을 갖고 예술단체의 경영까지 맡아야 하는 구조가 오히려 국·공립 예술단체의 전문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공공노조 산하 사회공공연구소의 박정훈 연구원은 “훌륭한 예술가가 예술 감독을 맡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예술 감독이 예술과 관련되지 않은  보수체계나 고용문제의 권한까지 갖게 되는 것이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인지  미지수”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과녁을 벗어난 법인화의 화살, 단원들의 상처만 남아

이렇게 문체부가 내세운 법인화의 목표들이 의심받고 있는 한편, 법인화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들 역시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다. 국립극단 법인화 과정에서 23명의 기존 단원들은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해고 사유는 ‘예술 수준이 국립극단의 기준에 못 미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해고에 이르게 한 예술적 수준의 지표는 유인촌 장관이 국립극단의 공연을 4번 본 뒤 단원들의 발성, 발화를 평가한 내용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박정훈 연구원은 “국립예술단체에 대한 정부의 권한이 강화되는 법인화 체제에선 다양한 예술단원들이 공정하게 대우받기도 어렵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해고 통보를 받았던 23명의 단원들 중 훈련생 신분을 갖는 조건으로 7명의 단원이 남아있지만 이들은 정식 고용 상태가 아니기에 5개월마다 재계약을 해야 한다. 또 단원들에게 국립극단 내부의 구체적인 고용상태를 외부에 발설할 시 해고처리 된다는 계약서를 강제로 작성하게 하는 등 단원에 대한 국립극장 측의 부당한 대우는 계속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단원은 “우리는 국립극단에서 30년, 40년 일하며 예술인으로서의 자긍심과 프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이에 대한 기본적인 대우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시행되는 정책 아래서는 예술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인화 바람 속 위협받는 예술 공공성

전문가들은 법인화로 인한 예술 공공성의 하락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회공공연구소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 국립극장으로부터 독립해 법인화 된 국립 발레단, 오페라단, 합창단의 경우 국고지원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자체 수입을 늘리기 위한 수익성 위주의 운영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법인화 이후 국립발레단과 합창단의 정기·지방공연이 각각 110회에서 47회로, 41회에서 14회로 축소됐다. 특히 국립오페라단은 지난해 총 7번의 지방공연만을 실시해 지방 거주자들의 문화 향유권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음이 드러났다.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배성인 소장은 “예술은 마치 의료서비스처럼 모든 시민들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에 해당하며 공공예술단체는 예술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익성만을 좇을 때 국·공립예술단체는 예술의 공공성을 지키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공공성을 상실한 국·공립 예술단체는 그 존재 의의가 없다”고 주장했다.

현 국립극장의 법인화는 처음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예술단체의 고유한 전통과 공공성을 위협하고 있다. 박정훈 연구원은 “현 정부가 추진하는 법인화 정책의 정당성은 매우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예술단체의 고유성을 고려하지 않는 법인화 정책이 아닌, 지난 11년간의 국립예술단체 법인화 경험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문제점을 진단한 뒤 이를 바탕으로 국립예술단체의 공공성을 강화해 나갈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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