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50주년에 나온
자성의 목소리 아직도 유효해
소모적 개교 원년 논쟁 말고
서울대만의 정체성 만들어야

김인걸 교수

국사학과
이제 열흘 뒤면 또 개교기념일을 맞는다. 그런데 옛날 운동회처럼 모두가 즐거워야 할 축제의 장에서 오늘따라 스산한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을 타고 들어오는 국적 불명의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이 몰고 올 찬바람 때문일까. 십수년을 공들여 공부한 끝에 학위를 받은 후에도 어디 온전히 발붙일 곳 없어 허정개비처럼 연구실을 나서는 제자의 뒷모습이 드리운 긴 그림자 때문일까. 아니면 학기 초 조금 과제물이 많다 싶으면 우르르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강의실 붕괴’가 주는 참담함 때문일까. 도대체 서울대는 앞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지금으로부터 6년여 전, 필자는 한 학술회의(‘서울대 역사 되돌아보기’, 서울대학교 기록관, 2004.5.6.) 자리에서 발표자로 나섰다가 자괴감에 얼굴이 붉어진 적이 있다. 약정토론자로 나선 선배 교수가 스스로 ‘서울대, 과연 정체성이 있는 대학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는 “하나의 대학으로 융합된 정체성은 없다”라고 단언했던 것이다. 전에 개교 50주년의 장을 축하의 자리만이 아닌 ‘자성의 자리로’ 만들자고 제안하신 바 있어 공감하던 터였는데 선배의 고언은 충격이었다. 당시 필자는 1975년 ‘종합화’ 이후 연합대학 체제에서 명실상부한 종합대학으로서 자기정체성을 갖춰 나가기 위해서는 각 단과대나 학과(학부) 중심주의를 지양하고 범 대학 차원의 자성 위에 새로운 대학문화를 만들어야 하며, 또 그 가능성만큼 이 싹이 다치지 않도록 정체성의 기반을 다지자는 뜻에서 발표를 준비했다.

필자가 낙관할 수 있는 이유로 든 것은 네 가지였다. 초창기 불모지 상태에서 학문(학과)의 기반을 정초한 교수들의 노력과 자부심, 열악한 조건 속에서 각 학문 분야를 발전시킨 우수한 학생들, 자칫 갈등의 요소가 될 다양한 배경 속에서도 학문 내용을 일신하고 다변화를 추구해온 전통, 무엇보다도 교수 인원 증대에 따라 학과(대학) 내부의 민주적 의사결정구조가 자리하기 시작한 점 등이 그것이다. 아직 제도화되지 못한 한계는 있지만, 과거 그 열악하고 엄혹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누구나 수긍할 것으로 믿었다. 다시 찾은 나라의 ‘신생’ 서울대가 이룬 성과는 세계사에 드문 예의 하나로 기록될 것으로서 공과를 떠나 자부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형만한 아우가 없다고, 과연 선배 말씀이 옳았는지 이후에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각 대학의 각개약진이 도를 넘어 서울대라는 학문공동체의 근간까지 의심케 할 현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최근 ‘개교원년 올리기’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란도 하나의 예일 것이다.

사람들이 갖는 정체성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서울 등 대도시에 나오면 충청이나 영호남 강원 경기도 등 출신 지역의 동향 의식이 정체성의 기반이 되며, 도 단위에서는 시나 군이 각각 자부심의 원천이 된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각 학과나 대학의 정체성은 강조해야 할지언정 결코 부정해서 될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아우르는 국립서울대학교의 정체성, 만들어나가야 할 개성의 내용이다. 이를 채워나가지 못한다면 강의실의 붕괴가 ‘대학 붕괴’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1971년 관악캠퍼스 기공식에 맞추어 한 시인은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고 노래하였다. 과연 오늘 이 관악엔 겨레의 미래를 짊어질 포부와 용기를 가진 이가 얼마나 남아 있는가. 그 꿈이나마 자랄 수 있는 공간은 또 얼마나 남아있을까. ‘개교원년 찾기’를 둘러싼 해프닝이 어느 정도 잠잠해진 이제 그 여파로 생긴 앙금을 툭툭 털고 새 꿈 펼칠, 새 터 닦을 채비를 갖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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