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플라토닉 러브

 
이것은 사랑 이야기다. 두 연인이 갖은 역경을 딛고 행복을 쟁취하는 그런 보편적 연애담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애절한 사랑 이야기다. 불멸의 지혜에 한걸음 더 다가가고자 하는 인간의 순수한 짝사랑, 이 사랑의 다른 이름은 바로 ‘철학’이다.

분과학문으로 조각나기 전, 철학이 곧 삶인 시대가 있었다. 교육학과 교육철학을 평생 연구해 온 저자 조무남은 과거에 삶의 모든 영역을 끌어안던 철학을 그리워하며 교육 또한 철학과 동어반복이라 말한다. 그래서인지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세번이나 선정된 그의 이전 저작들에서는 ‘선(善)’과 ‘아름다움’ 등 교육이 추구할 철학적 가치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다.

그런 관점의 연장선상에 있는 『플라토닉 러브』는 소크라테스의 생애를 통해 진정한 철학과 교육의 가치를 풀어놓는다. 고대 그리스에서 신들은 인간에 의해 발명된 존재다. 영원불멸한 가치에 대한 인간의 동경이 영원불멸한 신을 만들었고, 인간은 다시 이들을 숭배하며 닮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신을 향한 숭배를 ‘사랑’의 과정으로 본다. 소크라테스의 삶을 묘사하며 플라톤이 정의한 ‘플라토닉 러브’도 마찬가지다. 지혜(sophia)에 대한 사랑(philia), 즉 철학(philosophia)을 뜻하는 플라토닉 러브는 소크라테스가 지혜의 신 아폴론에게서 신탁을 받고 그의 지혜를 나눠가지면서 시작된다.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무장한 소크라테스는 아고라로 나가 스스로를 지식인이라 칭하는 수많은 소피스트들과 맞붙는다. 소크라테스 특유의 대화법은 수사학적으로 궤변을 늘어놓는 그들의 말하기 방식을 격파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즉 영원불멸한 지혜를 믿는 소크라테스는 단순히 타인을 설득하는 데만 골몰하는 소피스트들의 궤변을 깨기 위해 일견 ’말꼬리 잡기‘로 보이는 대화법을 실시했다. 저자는 이 대화법이 엄밀한 논리와 보편적 질서를 추구하는 철학의 핵심이면서 무질서 속에 사는 우매한 대중을 지적으로 치료하는 교육이라 주장한다. 따라서 철학과 교육은 결국 하나인 셈.

지혜를 향한 소크라테스의 사랑은 그의 재판과 죽음이 상세히 묘사된 책의 마지막 장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여기서 어리석은 대중과 끝까지 지혜의 힘을 믿는 소크라테스가 대비된다. 앎에 대한 사랑으로 평생 외길을 걸어온 그의 삶은 일부 제자들의 배신과 대중의 유죄 판결로 패배하는 듯 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죽음마저도 추하고 욕망으로 가득찬 육신에서 해방돼 진리와 아름다움, 그리고 선함에 가까워지는 숭고한 관문으로 본다. 오히려 소크라테스에게 내려진 독배로 지혜를 향한 그의 사랑이 완성된다.

소크라테스가 그토록 찬양했던 지혜에 대한 사랑은 오늘날에도 온전히 구현될 수 있을까. 대중을 선동해 현자를 죽음으로 이끈 무질서와 포퓰리즘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저자의 인도에 따라 소크라테스의 고뇌에 공감한 독자들은 그가 꿈꾸는 사랑에 압도되고 매료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신을 닮으려는 인간은 끊임없이 고민하며 지혜를 사랑하고 추구할 존재로 태어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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