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 질서’ 위협하는 건 좌파 아닌 파시스트

지난 30일 전쟁기념관에서 한 강연회가 있었고, 이화여대의 김용서 교수는 이 강연에서 군부 쿠데타의 필요성을 언급하여 큰 논란을 일으켰다. 실제 강연과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공개된 강연 원고 전문은 상식을 넘어서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강연 원고는 탄핵을 주도했던 조순형 대표를 선각자로 칭송하는 데서 시작한다. 글에 따르면 지금의 시국은 ‘좌익’이 치밀하게 준비한 ‘혁명상황’이라고 한다. 곧 현 정부는 좌익세력이며 좌익 혁명가들은 ‘모두 사살’되기 전에는 물러나지 않기 때문에, 정당한 절차를 밟은 좌익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군부 쿠데타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논리를 이끌어낸다.

김 교수는 자신의 발언이 가져온 파문에 대해, 자신은 해석하는 교수이지 현실로 옮기는 정치가가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일부 이대생들은 교수님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며 김 교수 발언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을 비판했다고 한다.

김 교수가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던 바로 그 날, 서울지방법원에서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에 대한 판결이 내려지고 있었다. ‘내재적 접근법’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북한사회를 연구하던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에게는 징역 7년의 중형이 선고된 것이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情)을 알면서’도 북측을 위한 이론적 작업과 선전 활동을 해 왔다는 것이 재판부가 밝힌 이유였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송씨가 북한의 최고위급 대남 공작원이라는 사실이 법원 판결로 확인됐으며 그의 정체를 둘러싼 긴 논란도 일단락됐다”며 환영했지만, 논란의 끝을 한 언론사가 바로 다음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긴 판결문을 읽고 있어도 의문은 오히려 늘어만 간다. 검찰은 북한을 찬양하는 송 교수의 행적이 요인 암살보다 위험하다며 어이없게도 ‘펜은 칼보다 강하다’ 는 경구까지 인용했다. 그의 저술이 ‘정치적’인 것이었다는 ‘유권해석’앞에, 그의 학자적 양심이 송두리째 부인된 것이다. 그의 저서 한켠에는 서울대 학생들과의 영상강의에 대한 짧은 일화도 있다. 국제전화로 토론을 한 후 독서와 고민의 흔적에 뿌듯함을 느끼며, 별로 읽히지 않을 것 같은 책을 그래도 써야 한다는 의무감과 당위성을 발겼했다는 그 대목에도 학자로서의 진정성은 없다는 것일까.

이 모든 논란의 가운데에 국가보안법이 있다. 송 교수는 최후진술에서 국가보안법이 통일의 장애물이라고 주장했던 반면, 재판부는 오히려 송 교수의 저술 활동이 평화통일의 장애물이었다고 판단했다. 이 타협할 수 없는 두 논리 가운데 사법부의 권위에 손을 들어준다 해도, 처벌받아야 할 사람은 송 교수만이 아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종종 파시스트가 좌파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독재는 반대하는 사람들의 머리를 때리지만, 민주주의는 반대하는 사람들의 머릿수를 센다고 했다. 누가 자유민주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가. 송두율 교수가 남측에 비판적인 사상을 갖고 있었다고 쳐도 그 사상이 민주주의를 총칼로 없앴던 군부의 폭력보다 위험한가. 예비역 장성들에게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보다 위험한가.

송두율 교수에 대한 판결이 실정법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쿠데타를 선동한 김용서 교수는 더욱 냉정한 법의 잣대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마침 내란선동 등의 혐의로 김용서 교수를 고소한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일단은 검찰의 강력한 체제 수호 의지를 기대해 볼 일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