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1년여 동안 통 보이지 않던 학부 학생 하나가 학교에 다시 나타났다. 영화 「실미도」의 작곡가로 대서특필된 각종 신문의 기사와 함께 말이다. 학교에서는 영화음악에 대해 전혀 가르친 바 없고 그렇다고 영화음악을 한다고 특별히 학교 공부가 뒷전인 학생도 아니었는데, 거의 처음이다시피 한 작품에서 대성공을 거둔 것이 신기하고 궁금했다. 마침 그가 내 수업의 수강생인지라 특별히 「실미도」 영화음악의 제작 과정에 대해 듣는 시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수업을 위해, 작곡된 오케스트라 총보, 미디(midi)로 제작된 가상 녹음 자료,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된 최종 녹음 자료 등이 영화의 영상과 함께 사용되었다. 이 영화음악은 미디로 제작되었거나 이미 기존에 있는 음악을 부분적으로 차용했거나 하는 식일 거라는 예상을 깨고 음악 전체가 모두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위해 완전히 새로 작곡된 것이었다. 음악의 사운드는 명료하고 단순했으나 한편 자극적이고 다이나믹했다. 작곡가는 소리 하나를 통해 영상의 느낌을 관객에게 더욱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영화 「실미도」의 영상은 한 작곡가의 ‘음악’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덧입고 관객의 가슴 속 깊은 곳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강렬한 인상을 심고 있었다. 그런데 「실미도」의 음악을 악보로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작곡과의 수업시간에 다루어지는 내용들이 음악에 그대로 적용되어 있었다. 그의 음악은 표면적으로 자극적이며 감각적이었으나 오로지 감각에만 의존하여 만들어진 성격의 음악이 아니었다. 영상의 긴박감은 빠른 템포의 규칙적 리듬과 크고 단순한 선율선, 단순하지만 명료하고 다이나믹한 효과를 낼 수 있게 고안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장면의 빠른 전환과 긴장의 고조는 선율의 급격한 전조 및 화성진행, 리듬의 축소 및 분할이라는 음악적 논리로 구체화되었다. 표면적으로는 타고난 감각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들리는 이 음악은 알고 보니 클래식 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가능한 기술적 특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음악의 매체와 장르가 빠르게 변해 가고 있다. 대학에 입학한 작곡과 학생들은 날이 갈수록 순수음악보다는 더욱 많은 대중들과 공유할 수 있는 영화음악 같은 장르의 음악을 선호한다. 일반 음악대학에서의 교육은 세상에서 생산되는 모든 종류의 음악들을 일일이 학생들에게 공급할 수 없다. 대학에서의 의무는 학생들이 어떠한 음악적 장르에 뛰어들어 일을 하건 간에 그 일을 할 수 있는 음악의 기초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기초를 튼튼히 쌓은 학생들은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건, 배운 바를 토대로 자신의 창조적 재능과 음악가로서의 소신을 맘껏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실미도」의 작곡가는 대학의 이러한 교육적 기능에 대해 자신의 타고난 기질과 재능을 바탕으로 이를 실제로 입증해 보인 셈이다.

아직 영화음악에 대해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터라 감독의 지도와 요구에 충실하여 작곡했다는 「실미도」의 작곡가. ‘경구 등장(!)’ 이라고 적힌 악보의 첫머리… 주인공이 등장할 때마다 더 힘 있게, 더 힘 있게 해달라는 감독의 끈질긴(?) 요구에 부응하여, 이 어린 작곡가는 클래식 음악을 통해 훈련된 자신만의 노하우를, 아는지 모르는지, 정말이지 효과적으로 사용한 듯 하다.

이신우 음대 교수ㆍ작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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