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슈퍼마켓의 저렴한 가격은
‘친서민’ 가면 쓴 대기업의 판매 전략
실질적 소비 아닌 윤리적 소비로
참된 ‘소비자 주권’ 행사해야

김미영 사회부장
최근 소비의 두가지 개념을 알게 됐다. 바로 ‘실질적 소비’와 ‘이념적 소비’라는 양극을 달리는 듯한 소비 유형 말이다. 기업형슈퍼마켓(SSM)에 가서 싼 피자를 사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실질적 소비자가 되고 비싼데도 동네에 있는 가게에서 피자를 사면 사회주의적인 이념적 소비자가 된단다. 피자 한판 사는 일도 사상의 척도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소비자 주권’이라는 개념까지 등장했다. SSM에서 사든 동네 슈퍼에서 사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이는 소비자의 권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미사여구를 활용해 이토록 열심히 SSM을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포장하는 행위의 근본에는 무엇인가숨겨져 있는 것 같다. 아마 당신과 내가 같은 생각을 하는 지도 모른다. 싼 가격에 물건을 공급한다는 ‘친서민’의 탈을 쓰고 먹을거리 소비시장까지 독점권을 쥐겠다는 SSM 상품의의도가 강하게 느껴진다.

대기업은 대대적인 문어발식 사업 확장의 일환으로 SSM을 전면에 내세우며 지역 사회에까지 침투하고 있다. SSM에서는 각종 상품들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일반 소비자들은 SSM의 물량 공세에 흔들리게 마련이다. SSM에 가면 슈퍼에 없는 시식코너,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묶음 판매 등 달콤한 유혹이 너무나도 많다. 반면 동네의 영세한 상점들은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 지역의 영세상인은 자신의 승합차에 불을 질렀고 연일 SSM 저지 농성이 벌어지고 있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전형이 현대 지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타개하기 위해 SSM이 지역 사회의 영세 상인과 협력·상호 보완 관계를 유지하라는, 즉 ‘상생’을 회복하자는 구호는 현실적으로 허울뿐인 외침인 듯하다. 벌써 대부분의 지역을 공격적으로 잠식한 SSM에게 다시금 상생의 의미를 떠올리라는 주장은 먹혀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SSM의 피자를 사먹지 않는 ‘이념적 소비’라는 방법이 떠올랐다. 근대에나 썼을 법한 ‘이념적’이라는 용어를 당장의 이익에 현혹되지 않고 멀리 내다보며 소비한다는 ‘윤리적’, ‘지속가능한’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한결 이해가 쉬워진다. 사실상 SSM의 거대한 영향력에서 개인은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SSM에서 파는 같은 재료, 조리방법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윤리적 소비, 지속가능한 소비를 떠올려 보자. SSM에서 편리하고 저렴한 맛에 피자를 사기보다는 지역 사회의 소규모 피자가게가 무너져 선택항이 하나만 남게 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소비방법 말이다. 거창하게 민중과 연대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미래의 내 선택항을 보호하고 홀로 남은 승자가 나에게서 부당한 이익을 착취해가는 상황을 막자는 것이다.

거대 기업의 권력은 막강하다. 시장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거대 기업의 횡포를 견뎌내기란 쉽지 않다. 지금까지 많은 영세업자들이 제대로 된 대항도 못한 채 스러졌고 개인의 선택도 그들의 입맛에 맞게끔 획일화돼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에게 우리의 ‘이념’과 ‘선택권’을 넘겨준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거대 기업 구조에 종속된 부품과 같은 삶이다. 윤리적이면서도 앞으로 나의 삶과 다른 이들의 삶이 풍요로워질 지속가능한 소비의 개념을 키워내자. 그리고 나아가 나의 작은 움직임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부푼 가슴을 안고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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