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숙인 교수
인류학과
오래 전 은퇴하신 교수님 한분은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정치적으로 험하던 1970〜80년대, 서울대 교수 노릇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낙성대 입구를 돌아 올라오다가 관악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면 자신도 모르게 감사의 탄식이 절로 나오곤 하셨단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30여년 전과 비교할 때 요즈음 캠퍼스에서 나를 가장 감탄하게 하는 것은 학부시절 어설프게 자리 잡고 있던 수목들이 아주 의젓한 아름드리로 자라 구석구석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모습과 캠퍼스 곳곳에서 바라보이는 여전한 관악산의 자태이다. 4월 중순, 13동과 중앙도서관 사이의 벚꽃은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고, 오월 신록 속에 자하연 가에 앉아 차 한잔 마시며 바라보는 청춘들은 그림이 따로 없다. 조만간 창밖으로 보이는 관악산 자락은 보색 대비가 얼마나 멋드러진 색채 조합인지 증명할 것이며, 버들골 벌판은 발자국 하나 없는 이른 아침 설경으로 말 그대로 눈부신 광경을 펼쳐보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애써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장면들이 곳곳에 있다. 일년 내내 진행되는 공사는 하루가 다르게 트인 전망과 빈 공간들을 잠식하고 있으며, 여기저기 돌출해 있는 흉측하고 위압적인 건물들은 애써 ‘포스트모던 양식’ 어쩌구 하면서 자위하기에는 너무나 제각각으로 부조화스럽다. 나보다 열살 쯤 선배이신 한 교수님은 마구잡이로 건물이 올라가는 것을 볼 때마다 당장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드신단다. 거기에다 남들 보기 부끄러울 정도의 주차 상황. 이번 학기에 새로 오신 한 외국인 교수님은 사진 찍기가 취미이신데, 사회대 6층의 서쪽 방향으로 보이는 관악산 풍경을 바라보며 “조만간 저런 풍경도 찍기 힘들게 되겠지요?” 하신다. 눈치가 빠르신 분이다. 어떤 모임에서 캠퍼스 난개발이 화제가 되자 본부 보직경험이 있으신 한 선생님께서 한마디로 모두를 좌절시키신다. 이미 향후 몇 년 동안 “꽁치 통조림에 꽁치 꽂듯이” 캠퍼스에 건물 “꽂을” 계획이 세워져 있다고. 설마, 농담이시겠지?

캠퍼스 장기종합개발 및 이용계획(혹은 종합보존계획)을 세워야 할 필요성은 이제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단계에 온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거대한 종합연구동 입주가 채 1년도 안된 상태에서 당장 다음 학기부터 교수연구실이 부족하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은 우아한 카페가 곳곳에 늘어나도 차 한잔 편안하게 마실 야외 벤치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직접 들을 기회는 갖지 못했지만, 작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노어 오스트롬 교수가 얼마 전 서울대에서 강연을 했다. ‘공유지의 비극’ 문제에 대한 전통적 해결책인 정부개입에 더해(‘대신해’가 아니라고 이해한다.) 공동체의 자치관리를 통한 또다른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전해 들었다. 물론 캠퍼스 공간과 개발문제를 공유지의 비극 문제로만 이해할 성격인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겠지만, 상당 부분 겹치는 것도 부정하기 힘든 것 같다. 캠퍼스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서울대 구성원들은 공유지의 문제를 어떻게 현명하게 해결해 갈 수 있을까? 하루빨리 좋은 해결책을 찾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권숙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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