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의 초등학교 운동장, 코치의 지도 아래 한 초등학교 야구 선수에 대한 1대1 특타가 이뤄진다. 나무 사이에 그물을 걸어놓고 ‘토스 배팅’을 시키는데 선수가 집중력을 잃을 때마다 초등학생에게는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의 폭언이 쏟아진다. 선수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이 보인다.

필자가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이웃에 고등학교 야구 선수가 살고 있었다. 프로팀의 상위 지명이 유력하다는 형이었기에 그는 동네 꼬마들의 우상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말년에 입은 부상으로 지명이 무산됐고, 오랫동안 야구밖에 모르고 살아왔기에 그 형은 자신의 모든 야구 장비를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린 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생 선수들에 대한 인권 보호에 있어서 제도적인 장치의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일찍부터 있었다. 하지만 위의 사례에서처럼 실제로 학생 선수들의 연습 및 시합 등에선 학부모나 행정가와 같은 사람들의 구체적,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말로는 학부모나 행정가들의 학생 선수 인권 보호에 대한 적극적 참여가 절실하다고 원론적인 말들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학생 선수들의 중·고등학교 및 대학교 진학이라는 현실적 문제에 얽매여서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서울 시내 주요 고등학교들은 야구나 축구 종목의 학교 간 시합을 주말에 한정해 치르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으며 이로써 학생 선수들에게 주중에는 최소한의 학습을 보장하려 한다. 학생선수에게도 다양한 진로 모색을 가능하게 한 다는 점에서 이는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시합이 주말에 이뤄진다고 해서 기타 연습이나 다른 활동에 의해 주중에 선수들의 학습권이 침해받을 우려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단순히 중요한 시합을 주말에 옮겨서 치르게 하여 학습권을 보장할 것이 아니라, 기사에서 언급한 외국의 사례처럼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으로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기사에서 제시된 미국의 사례와 같이 일정 수준의 학업 성취도를 이루지 못하면 선수 활동을 정지하는 등의 가시적이고도 강제적인 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 한국의 학생 체육은 효율성을 중시하는 소위 ‘엘리트 체육’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성공한 소수의 체육인들이 배출되는 동시에, 성공하지 못한 다수의 선수들은 인권이 침해된 학창시절의 기억과 함께 사회 생활에 적응하기 어렵게 됐다. 이러한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초·중·고교 학생 선수들의 인권과 학습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주말리그제의 확대 및 학부모와 행정 관련자의 관련 제도 정비 참여 등 제도적이고 실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남지훈
법학전문대학원·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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