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서울대 미술관 MoA「한국전쟁의 초상」전

“진흙이 엉겨 붙은 어머니의 머리카락은 피처럼 붉은 색이었다”고 한국전쟁의 기억을 묘사한 폴란드의 시인 타데우쉬 루제비츠. 그가 기억한 전쟁의 모습처럼 전쟁이란 때때로 짧지만 강렬한 찰나의 장면으로 뇌리에 새겨져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돼 버린다.

깊게 팬 상처는 예술가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가슴에 아로새긴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작품 속에 오롯이 담아내 왔다. 오는 11월 28일(일)까지 서울대 미술관 MoA에서 열리는 「한국전쟁의 초상」전 역시 비참한 전쟁의 시대를 지나온 예술가들의 작품에 서린 전쟁의 시린 기억과 흔적을 비추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사료에 의존한 역사적 재현물로 한국전쟁을 다뤄온 여타의 전시들과 달리 사진, 회화, 스케치 등 여러 작가들에게서 모은 1백여점의 작품을 통해 전쟁의 개인적 경험과 단상들을 보여주고 있다. 종군사진작가 임응식씨와 종군화가 김두환씨는 직접 전장을 취재하며 전쟁에 의해 피폐해진 사람들을 각각 카메라 렌즈와 화폭에 담아냈다. 낡고 해진 옷을 입은 어린 딸을 등에 업고 물끄러미 가게에 진열된 음식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를 담아낸 임응식씨의 「부녀」(1951)는 전쟁으로 궁핍해진 생활상을 보여준다. 입을 꼭 다문 채 팔을 축 늘어뜨린 아버지의 모습은 등에 업혀 칭얼거리는 딸의 모습과 대비돼 곤궁한 전쟁통에 딸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낙담한 그의 마음을 더욱 부각시킨다. 김두환씨의 「야전병원」(1953)은 야전병원에서 부상을 치료하는 와중에도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삶을 갈구하며 치료를 받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과 그 와중에도 부지런히 젖을 빨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선 어떠한 순간에도 삶을 놓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능과 몸부림이 투영돼 있다.

한편 조각가 오종욱씨와 화가 최영림씨는 전쟁이 중단된 이후 창작한 작품을 통해 전쟁이 자신에게 남긴 깊은 상흔을 들춰냈다. 오종욱씨는 전쟁 중 자기 대신 총을 맞고 죽어간 전우에 대한 죄책감을 담아 「위증인 No.2」(1960)를 조각했다. 앙상한 팔과 거칠게 마무리된 몸의 형상에서 새어 나오는 기괴한 분위기는 전쟁에서 전우를 떠나 보내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고통에 사로잡힌 작가의 모습을 대변한다. 최영림씨의 작품 「해변」(1956)에서도 전쟁을 기억하는 작가의 어두운 감정들이 배어난다. 어스름한 저녁 쓸쓸한 해변의 모습이 담겨있는 작품에선 검푸른 물빛에서 밀려드는 고독감과 가족을 북에 두고 홀로 월남한 작가의 죄스런 마음들이 교차한다.

이수억, 「폐허의 서울」, 캔버스에 유채, 71.6*95.3, 1952
사진: 서울대미술관 MOA 제공

전시회를 돌다 보면 형체를 알 수 없이 무너진 건물 앞에 힘없이 주저앉아 고개를 숙인 한 남자와 조우하게 된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 홀로 남아 절망하는 그를 위로하는 것은 오직 검은 새 떼뿐. 이처럼 절망스러운 전쟁의 상황을 담은 화가 이수억씨의 「폐허의 서울」(1952)은 어두운 색채, 화폭의 거친 질감과 맞물려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짙은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전쟁의 시대를 지나온 예술가의 작품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와 비참함이 가득하다.

전쟁 60주년을 맞이하는 2010년.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도 떨치지 못하는 전쟁의 강렬한 기억들과 마주하며 전쟁의 의미와 고통을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문의: 서울대 미술관 MoA(880-9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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