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찰이 G20 시위대 진압을 위해 음향대포 장비를 도입해 물의를 빚고 있다. 대체 G20이 무엇이기에 경찰은 사람의 고막을 찢을 만큼 강력해 해적을 상대할 때 사용한다는 장비까지 들여와서 이를 지키려 하는 것인가. 토론토에서 열렸던 지난 3차 회의에서는 30여 나라에서 온 활동가들과 캐나다의 각종 민중운동단체, NGO 회원 수만 명이 G20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섰다. 대체 G20은 무엇이기에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이 들고 일어나 반대하는 것일까.

1974년 오일쇼크 당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5개국이 모여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테이블인 G5를 형성했다. 그리고 이들은 자본주의적 모순이 크게 표출될 때마다 참여국을 확장시키며 체제를 지속시키기 위해 힘써왔다. 그리고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터지자 이 위기를 봉합하기 위해 꾸려진 것이 지금의 G20 정상회의다. 즉 G20은 표면적으로는 세계적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회의체인 것이다. 하지만 이 규정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지금의 상황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왜 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좋은 취지로 모인 각국 정상들이 서민들의 박수가 아니라 군대와 전쟁장비의 보호 속에서 회의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경제위기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왜 다른 나라에까지 가서 각종 탄압을 받아가며 이 회의체에 반대를 하냐는 질문에도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궁에 빠지게 되는 원인은 간단하다. G20이 세계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회의체라는 논의의 출발 전제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다. 그들이 극복하려는 경제위기는 투자은행과 자본의 위기이지 평범한 서민들의 삶의 위기가 아니다. 실제로 G20은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금융위기 책임자들의 살길을 터줬지만 죄 없이 집과 직업을 잃은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책임져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 대한 착취를 보다 강화할 것을 합의하고 있다. 자신들의 책임으로 일어난 경제 위기를 대규모 긴축을 통해 서민들이 책임지도록 떠넘기는 논의의 장이 지금의 G20이다. 연금을 줄이고, 공공부문 일자리를 줄이고, 세금을 올리는 것이 그들의 경제위기 해법이다.

G20 테이블에 앉아있는 자들과 밖에서 반대를 외치는 자들의 이해관계는 명확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극복하고자 하는 위기의 종류와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금융자본과 국가의 편에 설 것인지 평범한 사람들 삶의 편에 설 것인지를. 군대와 군사장비의 진압에 숨을 것인지, 이에 맞서 싸울 것인지를. 지금 당신의 이해관계는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김수현
농경제사회학부·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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