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고 푸짐한 대학가 식당들, 저렴한 가격에 가족 같은 분위기의 하숙집은 이제 옛말이 됐다. 오늘날 대학가는 어느 지역보다도 상업화돼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대학생들을 한숨짓게 한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대학가 물가는 가뜩이나 등록금에 힘겨워하는 대학생의 생활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원룸과 하숙, 학원 등이 담합으로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대학생들의 어깨를 무겁게 만드는 대학가 물가의 실태를 살펴보고 대책을 모색해봤다.

그래픽: 한혜영 기자 sweetdreamzz@snu.kr

최근 사회를 들썩이는 물가 상승 추세에서 대학가도 예외가 아니다. 2010년 상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6%였지만 대학생들이 체감하는 물가상승률은 그 이상이다. 점차 방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취업을 위한 사교육비 부담에 시달리며 밥 한끼 먹기도 두려워지는 것이 요즘 대학생들의 현실이다. 미래의 사회인으로서 학업에 전념해야 할 대학생들이 생활비 부담으로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 시장에 뛰어들면서 학교에서 멀어지고 있다.

대학가를 덮친 주거 대란

새 학기가 시작하면서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은 주거 문제에 부딪칠 때 물가상승을 실감한다. 최근 대학가에서 적당한 가격에 ‘살만한 방’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세탁기, 에어컨, 화장실 등 모든 시설을 갖춘 ‘풀옵션’ 원룸은 가격이 비싸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시원이나 미니 원룸은 성인 한 명이 겨우 몸을 누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기 때문에 목돈을 마련하거나 안락한 방을 포기해야 한다. 이번 학기 복학하면서 신림동에 원룸을 구한 김수민씨(건축학과·06)는 “복학 전에는 기숙사에서 지내다 자취를 하려니 조건에 맞는 방을 구하기도 어렵고 경제적 부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호소했다.

현재 서울대입구역 근처 5평짜리 원룸의 평균 시세는 보증금 천만원 기준 월세 4~50만원 선이다. 다른 대학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한양대 근처 하숙촌은 월세 50만원, 연세대는 45~55만원 정도이다. 서대문구 창천동의 태양부동산 관계자는 “작년에 비해 월세가 평균 5~10만원씩 올랐다”며 “고정적인 수요는 있는데 공급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가 주변 하숙집·원룸 주인들이 담합을 통해 가격을 부풀리고 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양대 하숙촌에서는 지난 2007년 말부터 지역 반상회에서 담합을 시작해 하숙비가 3년 만에 30% 가까이 올랐으며, 방학 중에 방을 비울 경우 가격을 할인해주던 관행도 폐지됐다. 경희대 주변 하숙들은 올해 초부터 일제히 ‘하숙보증금’을 비슷한 금액으로 받아 학기 중 학생이 집을 비울 경우 손실분을 메우고 있다. 동국대 대학가에서는 집주인들이 ‘하숙친목회’란 단체를 만들어 주말 식사를 제공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방값도 5만원씩 올려 받고 있다는 것이 학생들의 주장이다. 장충동에서 6개월째 하숙하고 있는 남현정씨(동국대 경제통상학과·08)는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담합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학생들이 손댈 도리가 없다”며 “동국대는 기숙사도 없어 집주인들이 값을 부르는 대로 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고려대 주변 원룸들 역시 방값이 급등하면서 담합 의혹을 받고 있다. 안암동에서 자취하는 신유란씨(고려대 경영학과·07)는 “2년 전 대개 30~35만원 하던 방값이 법대 후문 지역 몇 개 건물이 한번 가격을 올리니 주변 원룸도 다 같이 올랐다”며 “지금은 40만원짜리 방을 찾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취업대란에 울고 학원비에 또 울고

대학생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또다른 짐은 바로 학원비다. 최근 취업 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영어나 자격증, 고시학원의 비싼 학원비에 대학생들의 한숨이 늘어가고만 있다. 지난 6월 대학생 812명을 대상으로 한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취업사교육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취업을 위해 사교육을 받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61.5%에 달하며, 대학생들의 사교육비는 2003년 연평균 127만원에서 2010년 265만원으로 8년 새에 2배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명 어학원들이 몰려 있는 강남의 학원가는 높은 수강료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스펙’을 더 올리려는 대학생들로 붐빈다. 주당 강의 횟수나 강의 시간대에 따라 수강료에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주 5회 토플 종합반 수업은 45~50만원, 주말반은 25만원 수준의 수강료를 내야 한다. 지난 방학 동안 영어학원에 다니며 토플을 준비했다는 류나선씨(이화여대 경영학과·09)는 “교재비까지 합쳐 60만원을 넘기는 종합반 수강료가 부담스러워서 단과반을 수강했지만 그마저도 비싸다”며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학원비 때문에 이를 부담해주시는 부모님께 죄송스러웠다”고 말했다. 한편 취업 필수 자격증으로 꼽히는 MOS(Microsoft Office Specialist)를 취득하려면 적게는 24만원부터 많게는 50만원의 수강료가 든다. CAD(Computer Aided Design)와 같은 특정 컴퓨터 관련 자격증 준비학원은 수강료가 백만원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자격증학원 및 고시학원 시장 역시 몇몇 대형 학원들이 독과점적인 시장구조를 형성해 학원 수강료가 계속해서 치솟고 있다. 회계사 시험 전문 학원들의 1차 시험 종합반 과정은 구성에 큰 차이가 없고 수강료도 360~380만원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9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는 신림동의 행시·사시 전문 3개 고시학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01년 회당 6천5백원이던 사시 1차 기본강의료는 2010년 회당 1만8천~2만원으로 3배나 급등했으며 행시 2차 강의도 재작년 1만6천원 하던 것이 올해 1만9천~1만9천5백원으로 올랐다. 한달 강의횟수가 대략 20~30회이므로 대학생들은 매달 40~50여만원씩, 한 학기마다 거의 사립대 등록금에 달하는 비용을 학원비로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같은 분야학원들의 수강료 상승폭마저 서로 비슷해 행정고시사랑 등 고시생 커뮤니티에서는 담합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사시 준비생 오종훈씨(한국외대 법학과·08)는 “확신만 못할 뿐 고시생들은 학원들끼리 입을 맞췄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밥 한 끼, 커피 한 잔이 무서운 대학가

급등하는 물가는 대학생들이 밥 한끼 사 먹는 것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대학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저렴한 식당들이 사라지고 한 끼 밥값이 만원을 훌쩍 넘는 고급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 대학가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윤미정씨(사회복지학과·08)는 “새내기 때에 비해 대학동에도 카페베네, 미스터 피자와 같은 프랜차이즈점이 들어오면서 전반적으로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학동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박모씨(50)는 “재료비나 인건비가 계속 오르는데 마냥 저렴하게 장사할 수도 없다”며 “프랜차이즈점들이 들어오면서 사정이 더욱 어려워져 가격을 내리기는커녕 유지도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유동인구가 많은 이화여대나 홍익대 앞 같은 대학가는 이미 프랜차이즈점이 많이 들어서 있고 비싼 임대료가 반영돼 가격이 훨씬 높은 수준이다. 서울시 물가정보에 따르면 된장찌개 백반이 관악구 대학동에서는 평균 3천5백~4천원인 반면, 서대문구 신촌동에서는 4~5천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이 후식으로 즐기는 커피의 경우에도 대학동에서는 2천원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실 수 있지만, 홍대 앞 서교동에서는 평균 4천원을 내야 한다. 정혜린씨(이화여대 심리학과·08)는 “이대 앞은 다른 곳에 비해 주로 일식, 양식 등 비싼 메뉴를 파는 곳이 많고 커피 등 후식 값도 비싸다”며 “일주일에 많게는 7~8만원씩 나가는 식비가 부담스럽지만 교우 관계를 위해 감안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학내 식당도 물가 상승의 여파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외부업체 입점과 식당 고급화, 재료값 상승 등을 이유로 하나둘씩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연세대 학생회관 식당 ‘부를샘’은 푸드코트 형식으로 리모델링된 이후 3천원 미만이던 밥값이 4천5백~4천8백원까지 올랐으며, 이화여대 ECC에 입점한 푸드코트 ‘메인디쉬’는 음식값이 최저 4천원에서 최고 9천원 대로 학교 밖과 비슷한 수준이다. 서강대에서 민자 유치로 건립한 지하쇼핑센터 ‘곤자가 플라자’ 역시 파파이스, 커피빈 등 가격이 높은 외부업체들이 들어와 논란이 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학생들의 생활비 지출은 자꾸만 늘어가고 있다. 지난 6월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천국’이 전국 대학생 남녀 3천여명을 대상으로 소비지출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소비지출이 ‘늘었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52.7%에 달했다. 이는 2009년에 실시한 동일조사에서 25.4%가 소비지출이 늘었다고 대답한 것과 비교해 두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특히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지출 중 상당수가 외식비(27%)와 문화생활비(24.8%)로 나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가' 특수성 고려한 물가관리 필요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대학가 물가 때문에 학업에 집중해야 할 학생들이 과외와 아르바이트 전선으로 내몰리고 있다. 주거비를 포함해 매달 80~100만원에 달하는 생활비를 부모님의 주머니에 의존하기에는 사정이 넉넉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생 안용일씨(건국대 부동산학과·09)는 “지금 사는 원룸의 월세 때문에 부모님께 손을 벌리자니 죄송스러워 아르바이트를 해 절반을 직접 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월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로’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4명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58%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또 통계청에 따르면 대학생 중 39.7%가 휴학 경험이 있으며, 이 중 생활비 마련을 위해 휴학한다는 응답자가 12.8%에 이르렀다. 형편이 어려운 일부 대학생들은 아예 생활비를 대출받기도 한다. 학기당 백만원 이내로 생활비를 대출해주는 든든학자금의 경우 올 2학기 대출 현황이 22억에 이르며, 일반상환학자금의 생활비 대출은 약 44억에 달한다.

대학생들은 가까운 미래에 본격적으로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또 이를 이끌어나갈 계층이다. 그러나 상업화된 대학가 풍속과 치솟는 물가 때문에 대학생들은 사회 진출 준비에 써야 할 에너지를 학자금과 생활비를 구하는 데 쓰고 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이러한 현상은 개인적인 부담을 넘어서 사회적인 손실이다. 대학생과 대학가의 특수성을 고려한 물가 관리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대학생들의 부담을 낮추려면 우선 생활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주거비를 안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보금자리 주택처럼 대학생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YMCA 신용사무국 서영경 팀장은 “서울 내 대학 기숙사의 평균 수용률이 10%에 지나지 않아 주변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도 대학가 방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며 “학교 당국이 기숙사를 확충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대학과 연계해 학생들을 위한 원룸형 주택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에서는 대학가 다가구 주택을 매입해 지방 출신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임대해주는 ‘유스하우징’ 제도를 도입했지만 공급량이 118실에 불과해 현재 대학생들이 겪는 주거 대란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설동훈 교수(전북대 사회학과)는 “물가가 오르면 전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지만 생계비를 직접 벌지 못하는 대학생들은 특히 영향을 크게 받는다”며 대학가 물가에 대해 궁극적인 대책의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에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품목들을 정부에서 지정해 물가 관리를 하듯이 고공 행진하는 대학가 물가도 정부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장상환 교수(경상대 경제학과)는 “대학생의 주거와 교육을 무조건 시장에만 맡겨두면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며 “부당한 물가 인상을 억제하고 대학생들이 겪는 독과점적인 횡포에 대해 호소할 수 있는 분쟁조정위원회와 같은 기구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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