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논리에 함몰돼
위기에 봉착한 인문학
대학은 비판적 거리두기 통해
진정한 교육기관으로 거듭나야

김효리 학술부장

인문학의 위기는 곧 대학의 위기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몇 년 전 “대학이 직업교육소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한 기업 총수의 발언이 현실화되려 한다. 중앙대는 지난 4월 문과대학을 개편하며 독일어과, 프랑스어과, 러시아어과를 유럽문화학부로 통합하는 등 대대적인 문과대학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러한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크레인에 올라 시위를 벌인 독문과 재학생에게는 퇴학 처분이 내려졌다. 중앙대뿐 아니라 각 지역 대학에서도 어문계열, 철학과 등이 잇따른 폐지 수순을 밟았다. 주요 언론들도 대학에서 이뤄진 이제 ‘사회에 쓸모 있는’ 학과 위주의 개편이 국내 대학이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하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며 환영한다. 

이처럼 ‘쓸모 있음’을 이유로 인문학 전공을 폐지하는 흐름은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다. 지난 4월 영국 미들섹스대는 저명한 소장 학자 피터 홀워드 등이 재직하는 철학과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특별한 적자가 난 것도 아니다. 단지 이익이 크게 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대륙철학계를 이끄는 구심점이 되는 철학과였기에 노암 촘스키를 비롯한 저명 지식인들은 조직적으로 반대 운동을 펼쳤다. 또 재학생들은 “대학은 공장이다, 파업하라!”라는 구호를 내걸며 철학과 폐지에 극렬히 저항했다. 이들은 유럽에서 몇 안 되는, 제대로 운영되는 철학과를 폐지하는 대학은 공장에 불과하다고 절규했다.

왜 기업화돼 이익을 중시하는 대학에 인문학은 더욱 ‘쓸모없는’ 학문이 돼 버린 걸까. 실상 인문학의 위기는 단순히 수요가 적어 생기는 학과 차원의 소외 현상만이 아니다. 학자들은 인문학 자체에 내재된, 기존 체제와 거리두기를 하는 비판이 진정한 인문학의 가치라고 말한다. 인문학이 이러한 본래 기능을 상실하고 있을 때 진정한 위기가 닥쳤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의 논리는 날 선 비판을 좋아할 리 만무하다. 경영상 이익이 되는 ‘쓸모’를 운운할 때 인문학의 비판기능은 ‘쓸모없음’의 전형일 뿐이다. ‘비판’ 기능을 상실한 인문학은 위기를 넘어 죽음에 이른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인문학의 ‘쓸모없음’이 못마땅한 오늘날의 대학이 결국 ‘직업교육소’로 전락할 것인가. 사회가 급변하면 대학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달라지는 것은 맞다. 근대사회에서는 급속한 산업화로 인문학 전공보다는 실용적 기술과목 위주로 대학 교육과정 재편이 거듭됐다. 한편 유럽에서 전후시기가 인문학의 황금시대라 불리며 자율성이 보장된 대학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완전고용이 보장될 수 있는 경제적 호황, 진보에 대한 국민적 열광, 그리고 민족적 가치 구축에 대한 요구 때문이었다. 당시 시대 상황과 현저히 다른 지금, 대학의 자율성과 ‘거리두기’가 지켜질 수 있을까. 대학이 키워온 본연의 자율성을 포기하고 기업의 기준에 따라 직업교육소로서 충실하게 기능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대학이 직업교육소로 전환되면 대학생의 취업문이 더 넓어질 것이라는 기대 역시 순진한 낙관에 불과하다.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의 위기이며 곧 사회의 위기라고 목소리가 높아지는 지금, 대학이 어떤 공간인지 대학에 몸담은 이들이 민감하게 주시해야 한다. 비판적 거리두기가 실종된 대학에서 ‘쓸모’있는 것들만 배워 스펙을 이력서에 채워간다면 사회에서 그저 그런 직업인이 될 것이다. ‘쓸모없는’ 것들로 채워나가는 ‘대학’ 생활과 ‘쓸모 있는’ 것들로 채우는 ‘직업교육과정’, 두 갈림길 사이의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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