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 없는 특화거리가 많은 한편 우리나라 곳곳엔 자연 그대로, 사람들의 손때 묻은 그대로 자기만의 색깔을 완성한 특화거리도 존재한다. 역사와 문화를 지닌 특색 있는 거리를 발전시키고 고유한 거리 문화를 보호해 온 ‘명물 골목’들을 찾아가 보았다.


왁자지껄함이 먹거리의 맛을 더하는 종로 5가 '광장시장 먹자골목'

사진: 서진수 기자 ppuseu@snu.kr

“마약김밥? 저기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두세 집 더 있어.” 먹을수록 더 먹고 싶다는 ‘마약김밥’. 그 이름만으로도 궁금증을 자아내 찾아간 곳이 마침 문을 닫아 실망한 기자에게 한 상인이 대뜸 말을 건넨다. 툭툭 던지는 아주머니들의 무심한 입담을 받아내야 함은 물론이고 옆 사람과 비좁게 어깨를 맞대고 등받이 없는 의자에 어렵사리 앉아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이곳은 바로 광장시장 먹자골목이다. 심지어 자리 잡은 좌판에 없는 음식을 시켜도 다닥다닥 붙어있는 옆집에서 음식을 공수해오니 상인이나 손님이나 격의없긴 마찬가지.

시장 중심부에서 파는 호떡, 전, 빈대떡, 비빔밥에서부터 육회골목, 등심골목 등 곁가지 친 골목의 메뉴까지 더하면 광장시장에서 파는 음식은 다양하기 그지없다. 먹는 것에 있어서는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라던 대중가요 ‘화개장터’의 구수한 노랫가사가 딱 들어맞는 시장이다.

100년이 넘는 광장시장 골목은 곡절 많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해 그 의미가 더욱 크다. 1904년 을사늑약 체결 후 일본이 남대문시장의 경영권을 장악하자 3명의 거상들이 경제적 국권을 회복하자며 광장시장의 발족을 결심했다. 이렇게 탄생한 최초의 상설시장인 광장시장은 현재 건물 안팎과 골목 사이사이로 주단, 한복, 침구, 주방용품 등 다양한 품목을 유통하는 종합시장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이 중 한 부분을 차지하는 먹자골목은 왁자지껄한 중심부에서부터 사방으로 뻗어 나온 갈래길까지 노점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군침을 삼키다보면 길 잃기도 십상이다. 눈이 절로 휘둥그레지는 이 거리에 걸음을 내딛고 싶다면 오전 9시 30분에서 오후 11시 사이 종로 5가역으로 찾아가자. 먹거리뿐 아니다. 사람이 많이 오냐는 질문에 “바빠서 대답 못하겄소”라며 야멸치게 퉁을 놓다가 이내 “도움이 못돼 미안하네”라며 웃는 ‘나주집’ 아주머니의 투박한 정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먼지 냄새에서 떠오르는 사람 이야기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

사진: 신동호 기자 clavis21@snu.kr

시간이 멈춘 듯한 부산의 한 골목에 들어서면 구석진 자리에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고서(古書)부터 아직도 반질반질한 고시·영어 문제집까지 다양한 책을 취급하는 20여 개의 책방을 나란히 만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느릿한 걸음으로 골목을 거닐거나 벽에 기대어 책을 읽는 이곳은 부산 자갈치역에서 나와 국제시장을 지나면 곧바로 나오는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됐을 때 북에서 피난 온 한 부부가 헌책 노점을 연 것이 이 골목의 시작이다. 많은 대학들이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그 앞 골목에 자리 잡은 이 헌책방 골목은 1970년대 더욱 확장돼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책은 이동하기가 어려워 더 오래 한 자리를 지키는 것 같다”는 김종훈씨의 ‘대우서점’은 책방 골목에서도 오래되기로 첫손에 꼽힌다. 책만큼 사람도 많이 봤다는 그는 “교수들이나 대학원생들이 후배를 데리고 올 때 기분이 좋다”며 “20대 초반에 봤던 학생이 어느덧 50세가 넘어 아내를 데려온 적도 있었다”며 웃는다. 책을 통한 인연을 설명하던 그는 사뭇 진지해져 “헌책방 골목 상인들이 스스로 책문화를 만든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책의 소중함을 알리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보수동 책방골목’의 나날은 분주하기만 하다. 책방 골목 사람들은 책방 한구석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카페를 만들거나 상인들이 함께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행사’를 열며 책을 살리기 위해 애쓴다. 골목을 거닐다 공정무역 카페를 겸한 ‘우리 글방’에 붙여진 글귀가 눈에 띈다. “동네마다 헌책방이 싹트면 동네 삶터는 튼튼해집니다” 오랜 책먼지가 쌓여 튼튼하게 다져진 ‘보수동 책방 골목 상인들’의 삶터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될 듯하다.


민들레, 궁글레, 황백, 석창포까지….
다양한 한약재의 향이 서린 '서울 경동시장 골목'

사진: 하태승 기자 gkxotmd@snu.kr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에 내리면 약재 냄새가 폐부에 차분히 스며든다. 한약 냄새 자욱한 이곳은 국내 한약재의 70%가 거래되는 경동시장 골목. 볕을 쬐고 있는 수수, 찹쌀가루 등을 지나 좀 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민들레, 둥굴레, 헛개나무와 같이 익숙한 약재부터 두충, 황백, 석창포 등 이름도 생소한 약재까지 다양한 한약재들이 좌판 가득 펼쳐있다. “미용관련 약재를 사려고 들렀다”는 일본인부터 “일주일에 한번은 꼭 용인에서 온다”는 할아버지까지 공통적으로 말하는 이곳의 특징은 “사람이 많이 모여, 거래되는 물건이 유독 많다”는 점이다. 경동시장 골목은 한약재를 파는 약령시장 골목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곳은 한약재 외에도 다양한 물건들이 거래되는 재래시장이기도 하다. 약령시장 건너편 시장 골목에서도 마른 고추와 표고, 해산물뿐 아니라 개구리, 거북이, 장어 등 흔히 볼 수 없는 식재료들이 눈길을 끈다.

경동시장 골목은 조선왕조 당시 가난한 백성을 치료했던 보제원(普濟院) 자리에 한국전쟁 이후 농민들이 농·임산물 판매를 위해 모이며 자연히 형성된 곳이다. 이후 이곳에 한약 상인들이 하나둘 모이며 경동시장은 현재 골목의 모습으로 발전해왔다. ‘효성약초’의 이석민씨는 “손수 농사를 짓고 약초를 채취하던 사람들이 이를 팔러 모이던 전통이 아직도 남아 있어 여전히 지방 직거래나 해외무역이 활발하다”며 “같은 약재라도 저렴하고 종류가 다양해 일반인부터 관련업계 종사자,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다”고 말했다.

제분소의 오곡 찧는 소리와 한약재를 ‘썩썩’ 써는 작두 소리가 바지런히 들리는 경동시장 골목. 오늘도 경동시장의 사람들은 한결같은 한약재 내음과 함께 수백년간 자생적으로 만들어온 골목의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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