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이뤘다. 당시 대도시에 집중된 주택개발과 보급에서 밀려난 빈민들은 도시 곳곳에 판자촌을 이루며 그들의 공간을 일궈냈다. 하지만 판자촌의 주택들은 대부분 무허가 주택이고 재개발 1순위 대상이어서 그곳에서 도시빈민들의 삶은 언제나 불안하다. 판자촌 주민의 주거권은 항상 재개발을 둘러싼 여러 이권들의 뒷전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열악한 주거 환경에 고통받고 있지만, 도시에 집중된 일자리 때문에 판자촌을 떠날 수 없는 도시빈민의 삶은 오늘도 고단하다. 이에 『대학신문』은 부산시의 대표적 판자촌인 대연우암마을, 서울시 강남구의 판자촌인 재건마을과 달터마을, 그리고 수정마을을 취재해 그들의 삶을 살펴보았다.
공동체로 삶을 일구는 대연우암마을
부산시 남구의 부산외대 뒤편,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판잣집이 듬성듬성 모여 있다. 이곳이 현재 68세대가 살고 있는 대연우암마을이다. 1970~1980년대 부산에는 대규모 개발이 이뤄지면서 주택 전셋값이 폭등했다. 비싼 전셋값에 집을 구하지 못한 영세민들이 하나둘 아무도 살지않던 이곳에 모여들며 대연우암마을을 형성했지만 원래 국유지였던 마을 부지를 정부가 부산외대에 매각하며 위기가 찾아왔다. 부산외대는 1990년 10월 26일 구청직원과 경찰을 동원해 마을을 철거하려 했고, 이를 계기로 주민들은 공동체를 만들어 마을을 지키기 시작했다. 현재 2013년까지 부산외대의 캠퍼스 이전이 완료될 예정인 대연우암마을의 앞날은 위태롭기만 하다. 하지만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마을회관 당번과 마을 보초를 서는 등 마을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깊은 유대를 다졌다. 비록 열악한 환경의 판자촌이지만 마을 사람 모두 힘을 모아 가로등을 설치하고 마을 출입로를 놓으며 마을을 좀 더 살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불안한 주거 환경으로 인해 자칫 황폐해질 수 있는 삶을 ‘공동체’라는 그들의 방식으로 따뜻하게 지켜나가고 있었다.
신동호 기자
clavis21@snu.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