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 날씨는 통상적인 서울의 그것과 다를 때가 많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이 알려준 서울의 일기예보만 믿고 관악산으로 들어왔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는 가끔 학교를 찾는 외부인들만 경험하는 일이 아니다. 본교 재학생들이나 교직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신입생들한테 가끔 이런 우스갯소리를 할 때가 있다. 관악 캠퍼스의 날씨는 서울지방이 아니라 경기 중부 산간지방의 일기예보를 보라고 말이다. 믿거나 말거나 서울대 날씨에 관련된 우스갯소리는 또 있다. 서울시내에서 열리는 각종 회의나 세미나 등에서 서울대 교수를 식별해 내는 방법이 하나 있다고 한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와이셔츠 위에 조끼를 가장 먼저 걸쳐 입거나, 봄을 떠나보내며 조끼를 가장 나중에 벗는 남자 교수들은 서울대 소속일 확률이 비교적 높다는 것이다.

이처럼 같은 서울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서울대의 날씨가 조금 다른 까닭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관악산 자락의 청정한 자연환경 덕분이다. 관악캠퍼스가 들어오기 전, 현재의 서울대 자리는 골프장이었다. 지금도 캠퍼스 곳곳에는 과거 관악골프장의 흔적이 남아있다. 버들골은 1번 홀 페어웨이였으며 교수회관은 클럽하우스, 그리고 솔밭식당은 기사식당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서울대가 위치한 관악산 북사면은 더는 옛날의 자연 녹지공간이 아니다. 대신 이곳은 수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하나의 신도시다. 여백 없이 빽빽이 들어선 건물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가는 차량들, 그리고 풀밭과 맨흙을 빠른 속도로 잠식해 들어가는 아스팔트 포장의 위세 탓이다. 관악캠퍼스는 이미 만원이고 포화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퍼스는 오늘도 공사 중이다. 그것도 난개발에다가 부실공사의 혐의까지 다분한 상태로 말이다.

물론 공간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건물을 자꾸 짓는 것만이 결코 능사는 아닐 것이다. 이에 나는 캠퍼스 내 공사 안식년제의 도입을 가끔 생각해본다. 가령 5년이나 10년에 한번씩 1년 동안은 캠퍼스 안에서 건물 신축공사를 일제히 중단하자는 주장이다. 마치 국립공원에 안식년 구간을 설치하듯이 말이다.

이는 공사 안식년 기간에 캠퍼스 내 자연환경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건축행위의 의미를 다 함께 성찰해보자는 취지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안식년이라고 해도 좋고 연구년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만약 이처럼 시간적인 차원에서 공사 안식년제를 도입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대안은 또 있다. 그것은 공간적인 차원에서 캠퍼스 내 그린벨트를 학내 관련 법규를 통해 성문화하는 일이다.

서울대가 대외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 한두개가 아니지만 그것들 가운데 결코 빠트릴 수 없는 것이 내가 보기에는 자연환경이다. 경기 중부 산간지방 특유의 하늘과 바람, 그리고 수풀과 바위는 서울시내 소재 다른 어떤 대학도 감히 경쟁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관악캠퍼스의 날씨가 서울시내의 그것과 똑같아지고 말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커지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사태의 책임이 바로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는 점이다. ‘그린 캠퍼스’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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