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내 인지과학 응용가능성 연 이정모 교수법인지과학, 행동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과 융합되는 인지과학 연구외부 환경에 따라 인지구조 달라진다는 ‘체화된 인지이론’ 패러다임 주목

 최근 인지과학은 학제적 연구로 응용 범위를 확장해 주목받고 있다. 1980년대부터 국내에 인지과학이란 패러다임을 소개해 온 이정모 명예교수(성균관대 심리학과)를 만나 인지과학의 응용 현황과 국내 학계가 나아갈 길을 들어봤다.
 

사진: 서진수 기자 ppuseu@snu.kr


국내에서는 인지과학이 생소한 것 같다. 학문적 정의를 내린다면?

한마디로 ‘마음(minds)’의 과학인 인지과학은 마음을 과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본다. 일상적으로 흔히 인식되는 마음은 감성·감정과 동일하다. 그러나 인지과학의 관점에서 마음은 감성은 물론 이성과 몸의 움직임까지 포함하며 외부 자극을 수용하고 저장된 정보를 처리하는 ‘기계’이다. 즉 컴퓨터의 정보 처리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유추·해석하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을 정보 처리 기계로 보고 마음의 세부 절차를 분절해 나타내는 ‘형식화’가 인지과학 연구의 기본전제다.

‘마음’은 전통적으로 심리학이 탐구해온 분야가 아닌가. 기존 심리학과 인지과학은 어떻게 다른가?

인지과학은 전통적 ‘행동주의’ 심리학과 달리 마음을 객관적 분석의 대상으로 끌어냈다. 20세기 전반까지 심리학에서는 마음을 관찰할 수 없는 대상으로 규정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이 객관적인 분석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외적인 행동인 ‘조건’과 ‘반응’으로 유아의 언어 습득 과정을 분석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유아가 특정한 조건 하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이후 동일한 조건에서 습득한 반응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언어를 구사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미국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는 유아가 습득한 반응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 내부에서 기존의 단어를 재조합하고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마음에 내재한 정보처리 메커니즘의 존재가 밝혀지며 마음을 객관적인 분석 대상으로 보는 새 패러다임이 확산됐다.

인지과학의 응용 현황은 어떤가?

인지과학은 다양한 학문과 융합된다. 법인지과학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존 법학에서는 사건 판결 시 범죄 행위 자체를 가지고 판단했다. 그러나 범인의 마음 속 메커니즘을 중요시하는 법인지과학은  범행 당시의 충동, 감정 때문이 아니라 과거부터 축적·저장된 경험이 마음속에서 범죄를 저지르게끔 작용했다고 본다. 이러한 면에서 일부 인지과학자는 행위 자체보다 범죄 심리를 형성한 조건을 참작해 형량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행동경제학도 인지과학을 경제학에 접목한 사례다. 전통적 경제학은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라고 전제한다. 하지만 이익 배분 게임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선택이 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자신의 이익 전체를 포기하는 비합리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이 때로는 비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실험결과에 의해 ‘합리적 인간’이라는 전제가 무너졌다. 이밖에 작가의 창작과 독자의 이해 과정을 형식화하는 인지문학, 인간의 신앙 역시 인지과정으로 파악하는 인지종교학 등 인지과학의 융합시도는 다양하다.

해외 인지과학 연구에서는 이미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했다는데?

1950년대부터 시작된 인지과학 연구는 변화를 거듭해 해외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초기 인지과학은 마음과 컴퓨터의 유사성에 주목해 인간의 인지과정을 컴퓨터의 순차적 정보 처리 과정인 ‘알고리즘’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이후 뇌신경과학의 발전으로 일어난 제2의 패러다임에서는 생물학·해부학적 구조에 바탕을 둔 뇌의 기능적 측면이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방식에 연구 초점을 맞췄다.

이제는 제3의 패러다임, ‘체화된 인지이론’이 화두다. 인간의 마음은 컴퓨터의 계산 과정도 아니고, 뇌의 내부에서 환경과 독립적으로 조정되는 것도 아니다. 체화된 인지이론의 핵심은 외부 환경에 따라 인간의 인지 구조가 달라지는 동시에 인간의 인지 구조도 환경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글을 쓸 때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것보다 달리 키보드로 자판을 두드리면 더욱 자연스럽게 생각이 전개되는 경험은 외부의 인공물이 마음의 일부처럼 작용하는 사례다. 이러한 관점은 로봇을 연구하는 공학 분야인 로보틱스(robotics)에도 획기적 패러다임 전환을 제공했다. 로봇의 물리적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에 초점을 뒀던 로봇 연구는 외부와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학습하는 능동적 ‘인지로봇’ 개발로 연구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인지과학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것 같다. 향후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심리학의 연구 성과가 축적돼 온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전통적 심리학의 관점과 배치되는 사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인지과학이 자연스럽게 태동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는 ‘마음’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해외 학문의 조류를 좇아 인지과학을 수용했다. 인지과학이 발전하려면 우선 ‘마음’이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기존의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울러 인지과학을 연구하고 교육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현재 5개 대학원에만 개설된 인지과학 학제가 학부 과정으로 확대·개설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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