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아름다운 거짓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아름다운 거짓말
  • 대학신문
  • 승인 2010.10.1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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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2010 노벨문학상 수상자 바르가스 요사 삐딱하게 보기

"문학은 불꽃이다”, 페루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1936~)가 1967년 베네수엘라에서 로물로 가예고스 상을 수상하면서 내지른 사자후이다. 현실의 부조리에 맞서 불꽃처럼 타오르는 문학, 현실의 부조리를 활활 태워버릴 문학을 천명한 것이다. 그 사자후는 2010년 바르가스 요사에게 크나큰 영광이 돼 돌아왔다. 노벨상위원회가 권력에 대한 신랄하고 예리한 비판,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개인의 처절한 저항(때로는 처절한 패배)이 담긴 작품들을 쓴 점을 높이 평가해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권력과 부조리에 저항한 문학 천명, 노벨상위원회를 사로잡은 이유

바르가스 요사의 비판은 좌와 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1971년에 쿠바 문인 에베르토 파디야의 자아비판 사건이 일어나자 바르가스 요사는 누구보다 더 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아직 쿠바혁명이 지식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던 시점이었는지라 바르가스 요사는 이들의 공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 1990년에는 제도혁명당의 장기집권 하에 있던 멕시코를 공산주의 체제보다 더한 독재로 묘사해 멕시코 국민의 공분을 샀다. 그것도 멕시코 방송에 출연해서, 또 몇달 뒤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는 멕시코 문단의 원로 옥타비오 파스 앞에서였다.

바르가스 요사의 사자후는 문학의 장에서도 여지없이 터져 나왔다. 그는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작가론인 『가르시아 마르케스: 신성 살해 이야기』(1971)를 통해 자신의 문학관을 피력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금지된 것을 갈망하는 악마들이 득실거리는 작가들의 내면세계가 창작의 원천이다. 창작을 신의 지위에 대한 도전, 나아가 조물주의 창조 행위에 비유한 셈이니 문인으로서 자긍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엿볼 수 있다. 바르가스 요사의 사자후는 가히 명품이었던 것이다.

문학이 사회의 등불이라는 자부심과 집념으로 조숙한 성공 이뤄

작가가 조물주이고, 문학이 사회의 등불이라는 자부심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바르가스 요사는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그가 문학을 시작한 1950년대의 페루 현실과 문화적 토양이 너무나 척박했기 때문이다. 독재 치하의 가난한 나라, 존경할 만한 선배 소설가가 거의 없는 나라에서 바르가스 요사는 작가라는 자존심 하나로 겨우 버티다시피 했다. 그러면서 파리 다락방의 문학청년이 되겠다는 꿈을 키운다. 척박한 국내현실을 벗어나고, 소위 세계의 문화수도에서 선진 문학조류와 접하고, 세계의 중심에서 자신의 작품을 널리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1958년부터 유럽 생활을 시작한 바르가스 요사의 조숙한 성공은 이러한 집념의 소산이다. 그의 출세작은 두번째 작품이자 장편소설로는 첫번째 작품인 『도시와 개들』(1962)이다. 이 소설은 1960년대에 국제적으로 라틴아메리카 소설 붐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한 스페인의 세익스바랄 출판사 문학상을 받는다. 라틴아메리카 작가로는 바르가스 요사가 최초였다. 이로써 바르가스 요사는 불과 26세의 나이에 단숨에 스페인어권의 촉망받는 작가가 됐다. 또 1960년대에 쓴 두 장편소설 『녹색의 집』(1966)과 『‘성당’에서의 대화』(1969) 역시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면서 33세에 이미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꼽혔다. 훌리오 코르타사르(아르헨티나), 가르시아 마르케스, 카를로스 푸엔테스(멕시코)와 함께 소위 ‘붐’ 소설 작가 4인방으로 인구에 회자되었으니 세계적인 작가가 되리라는 꿈도 일찌감치 이룬 셈이다.

이 4인방 중에서 가장 젊은 탓인지 바르가스 요사는 새로운 조류를 좀 더 쉽게 받아들였다. 1960년대의 작품들이 진중했다면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1977)와 『새엄마 찬양』(1988) 등을 통해서는 유머와 에로티즘을 구사하며 자연스럽게 포스트모더니즘과 대중문화에 접근했다. 그렇다고 1970년대부터 가벼운 작품으로만 일관했다는 뜻은 아니다. 『세상 종말 전쟁』(1981)과 『마이타 이야기』(1984) 등은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실패 원인을 성찰하고 있으며, 『염소의 축제』(2000)에서는 도미니카공화국의 독재자 트루히요를 다루면서 다시 한 번 권력의 메커니즘을 파헤쳤다.

이러한 성과에도 필자는 바르가스 요사의 노벨상 수상이 유감스럽다. 물론 정치적 소신을 바꾸었다 해서 무작정 문제를 삼을 수는 없다. 또 그가 잠시 정치에 입문했다가 1990년 무명의 후지모리에게 패하는 과정에서, 백인이라는 이유로 역인종차별을 당한 것도 일정부분 사실이니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개탄하는 것도 당연하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서구로의 투항, 신자유주의 수사학과 일치하기도

그러나 그 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문학으로의 회귀를 선언한 회고록 『물속의 물고기』(1993)를 보면 바르가스 요사의 변신이 단순히 좌에서 우, 혹은 진보에서 보수로의 여정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에서 서구로의 투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바르가스 요사가 구사하는 인권, 민주주의, 자유주의 등의 수사학은 놀라울 정도로 신자유주의 수사학과 일치한다. 바르가스 요사에게 라틴아메리카가 나아가야 할 길은 서구의 발전 경로를 충실히 따르는 것뿐이다.

서구로의 투항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안데스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한 『케케묵은 유토피아』(1996)에서 잘 드러난다. 바르가스 요사는 서구식 질서와는 다른 질서를 원한 원주민들과 이들과 뜻을 같이한 지식인들을 인류 ‘보편적’ 가치를 거부하는 시대착오적인 집단으로 매도한다. 가령 바르가스 요사에게 원주민주의 소설가 호세 마리아 아르게다스의 소설은 ‘아름다운 거짓말’일 뿐이다. ‘보편적’ 가치의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젊은 시절 자신이 거의 유일하게 존경한 페루 선배 소설가까지 버리게 된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무슨 인연인가 싶다. 반쯤은 바르가스 요사에 이끌려 페루에 갔다가 그를 버리고 아르게다스를 택했으니 말이다.

필자 같은 이방인의 눈으로 보기에도 보편적 가치라는 잣대가 안데스의 식민성을 강화하는 수단일 뿐인데, 바르가스 요사는 어째서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일까? 권력에 대한 바르가스 요사의 저항을 높이 평가한 노벨상위원회의 결정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서구 잣대에 맞지 않는 이들을 치워버리는 데 기여한 문인에게 주는 상이 노벨문학상이란 뜻일까? 지금 필자에게 파리 다락방의 문학청년을 꿈꾸던 바르가스 요사의 치열한 모습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일 뿐이다. 바르가스 요사의 명품 사자후야말로 ‘아름다운 거짓말’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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