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좌파적 시선을 견지해온 저자의 독특한 이력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공연기획자,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으로 활동할 뿐 아니라 경향신문 등 여러 매체 기고를 통해 한국 사회에 대한 도발적 주장을 펼쳐왔다. 전작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에서 “우파는 죽음이다”라며 단호한 어조로 한국 사회의 폭력과 위선을 들췄던 저자는 이번에는 사랑을 화두로 삼아 ‘사랑의 부재’에서 오는 한국 사회의 병리현상들을 고발하고 저자만의 독특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저자는 한국 젊은이들이 연애라는 인간의 큰 환희를 주저하는 이유로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유교적 엄숙주의와 최근 팽배한 신자유주의를 꼽는다. 그는 먼저 성 담론을 천박한 것으로 만드는 구습적 유교관이 권위적으로 성 담론을 억압해 연애 를 하찮은 것으로 치부한다고 설명한다. 또 그는 신자유주의의 자본 제일주의 역시 젊은이들이 자본이라는 거대 권력에 순응하며 연애가 아닌 물질적 안정과 미래의 행복을 위한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권위와 자본 권력에 종속돼버린 젊은이들은 쉽게 사랑할 자유와 용기를 상실한다. 특히 급격한 사회적 변혁을 겪어왔던 한국사회는 혼란한 상황에서 권위에 순응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연애 불능 시대’를 더욱 부추긴다. 저자의 정의대로 사랑이 “자유를 촉발하는 가장 위험스런 촉매제”라면 권위적이고 자유가 제한된 사회에서 사랑은 감히 시도하기 두렵고 부담스런 존재가 돼버린다. 따라서 “그들이 더이상 거리에서 그녀들을 좇지 않는” 이유는 젊은이들이 점점 부담만 지우는 사랑의 자유를 포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이 사치스러운 것으로 전락한 ‘사랑 없는 사회’는 여러 가지 불행을 야기한다. 이때 저자는 사랑에 대한 범주를 넓혀 이를 사회 전반에 적용해 문제들을 진단한다. 저출산, 세대 갈등, 환경 파괴, 성 산업의 활개 등 사회의 음지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바로 ‘사랑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까닭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부모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을 강요하는 ‘효’ 개념은 위장된 사랑의 이름으로 세대 간 진정한 사랑의 통로를 봉쇄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진정한 사랑이야말로 시대의 불행을 해결할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말한다. 환희와 에너지의 원천인 사랑은 “세상을 변혁하는 가장 정확하고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한 코드는 바로 ‘야성’이다. 그는 자본과 관습의 굴레가 부과한 모든 계산을 떠난 야성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진정한 사랑의 환희를 맛볼 수 있다고 말한다. 친근한 인생 선배처럼 환희와 행복을 잃은 젊은이들에게 맘껏 ‘야성적으로 연애하라’고 외치는 저자의 충고는 ‘더 행복한 사회’를 향한 톡톡 튀는 대안이다.
정혜경 기자
noma1221@snu.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