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계사

클라이브 폰팅 지음 | 이진아 옮김 |
그물코 | 528쪽 | 2만5천원 

남태평양 이스터 섬에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아이 석상을 만든 주인은 거대한 조형물만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 주인없이 홀로 남겨진 모아이 석상이 외계인의 흔적이라는 등 여러 가지 설이 제기돼 왔지만, 이를 인간이 환경과의 긴밀한 의존성을 무시하고 개발을 앞세운 결과라며 일축한 책이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인 클라이브 폰팅은 『녹색 세계사』에서 인류의 역사를 인간과 자연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으로 파악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라는 인간이 제멋대로 나눠 놓은 틀에 갇혀있던 세계사를 ‘자연환경’이라는 새로운 틀에서 다시 쓴 이 책은 환경에 관한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1991년 처음 발간된 『녹색 세계사』 는 2007년 나온 개정판에서 그동안 변화된 지구환경에 맞게 자료를 수정하고 학문적 깊이를 더했다. 저자는 인류의 200만년 역사를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되짚어 봄으로써 이전까지 인간이 영위한 생활양식과 진보에 대한 믿음에 근본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저자는 인류 역사의 99%를 차지하는 수렵·채취사회가 오히려 생태계에 피해를 덜 주었을 뿐 아니라 농경사회보다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서남아프리카의 부시맨족의 식단은 현대인의 권장 식단보다 균형이 잘 잡혀있다. 게다가 식량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도 적어 남자들은 1주일 일하는 대신 2~3주씩 일을 하지 않고, 여자들은 하루 2~3시간 일한 뒤 나머지 시간엔 여가 활동을 즐기는 등 부시맨들은 ‘문명’ 사회의 인간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한다. 저자는 인류가 자연과의 밀접한 관계를 망각하고 지구의 유한한 자원을 마치 무한한 것처럼 소비할 때 어떤 섬뜩한 결과를 가져올지 담담한 어조로 경고한다. 농경생활과 함께 시작된 무분별한 자원 소비와 환경파괴가 인류의 몰락을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대한 문명을 자랑했던 마야가 불과 수십년만에 붕괴한 이유도 농경 사회의 발전에 의한 것이었다. 농업을 위한 지나친 삼림 벌목이 토양을 부식시켰고, 이에 따라 식량이 줄고 인구가 감소해 도시가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나아가 저자는 인류가 농경의 발전으로 인한 심각한 생태계 파괴를 목격하고도 진보에 대한 착각에서 깨어나기는커녕 더 큰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경고한다. 흔히 과학 기술을 이용한 경제성장을 인류의 진보로 여기지만 이러한 문명의 발달이 오히려 환경과 인류 자신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고 역설한다. 저자에 따르면 서유럽에서만 2만여명의 사망자를 낸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원인은 단순히 안전상의 부주의가 아니다. 에너지 개발에 몰두한 인류가 환경과 자신에게 돌아올 결과를 생각지 못해 생긴 아픈 상처다. 하지만 여전히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보는 인류는 이제 지구 온난화 등 전 지구적 환경문제에 직면하게 됐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풍부한 연구 성과를 통해 200만년이라는 긴 인류 역사를 꿰뚫는 통찰력을 보여준 저자는 “인류의 과거는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를 현대 사회에 물려줬다”며 다소 비관적인 결론을 내린다. 최근 환경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지속가능한 개발 담론이 떠오르고 있지만 인류와 자연 간의 근본적인 관계에 주목하는 저자가 과연 개발과 보존 사이를 단순히 저울질하는 최근 환경 담론에 만족스러워 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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