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동향] 신경윤리학이 뇌과학 시대에 던지는 질문

신경과학 하위 분과에서 독자적 학문으로 자리잡은 신경윤리학
도덕, 사회, 법적 판단 등 뇌신경과학이 발전하며 불거진 다양한 분야의 쟁점 다뤄

1848년 미국 버몬트 주 철도 노동자 피니아스 게이지는 폭약을 다루던 중 쇠파이프가 뇌를 관통하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평생 쇠파이프가 머리에서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채 살아야 했다. 그런데 사고 후 그의 행동변화는 놀라웠다. 예의 바르고 조용하며 준비성이 철저하던 그가 충동적이고 화를 잘 내는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이 사례는 뇌와 인간 마음 간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가 되면서 뇌신경과학 연구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 후 160여년이 지나 뇌신경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지만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윤리적 문제도 따랐다. 때문에 이 문제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신경윤리학은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 2002년 열린 미국 신경과학회 심포지엄부터 신경윤리학(Neuroethics)이 신경과학의 하위 학문에서 독자적인 융합학문으로 위상이 높아졌다. 한국에서는 2006년 과학기술부 지원으로 이춘길 교수(심리학과)가 신경윤리학의 첫발을 내딛은 이후 각 대학의 법학, 심리학, 철학, 의학 전문가들이 모인 신경인문학회가 지난 29일 신경윤리학 심포지엄을 갖는 등 활발한 연구를 펼치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로 주목받는 뇌신경과학과 윤리학의 접목은 크게 ‘신경과학의 윤리학’과 ‘윤리학의 신경과학’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다.

신경과학의 윤리학: 뇌과학지식 응용시 발생하는 문제 경고

먼저 ‘신경과학의 윤리학’은 뇌영상기술이나 향정신성약물 등 뇌과학 지식을 응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를 다룬다. 특히 fMRI(기능적 자기공명 영상) 사용의 윤리 문제가 대표적이다. fMRI는 특정 행동과 감정에 따라 어떤 부위에 혈액이 집중되는지를 시각화해 뇌의 부위별 활성도를 측정하고 인간의 정신작용을 읽어낸다. fMRI는 간질, 치매 등 신경질환과 정신질환의 진단·치료부터 거짓말 여부 판별, 뇌 활동 패턴 분석을 토대로 한 뇌유형분류(braintyping) 등 다양한 영역에 응용된다. 실제로 2003년 미국 아이오와 대법원에서는 살인사건 재판에서 용의자의 뇌파에 기록된 범죄 관련 기억을 증거로 채택해 판결하기도 했다. 자신에게 의미 있거나 친숙한 대상을 보았을 때 나타나는 특정 뇌전위를 이용해 용의자가 범죄 현장 및 증거물을 기억하고 있는지 밝혀내는 것이다. 이런 특성을 지닌 뇌파에는 범죄현장에 지문이 남는 것처럼 뇌에도 범죄에 대한 기억이 남는다고 해서 ‘뇌지문’이라고 불린다.

신경윤리학자들은 정교해진 뇌영상기술이 뇌신경정보를 상세히 제공하면서 ‘정신적’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뇌신경정보는 발현양상이 환경에 따라 현저히 달라질 수 있는 유전자정보와 달리 행동결정에 즉각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감정표현 특성, 범죄 성향, 치매 발병 가능성 등 개인의 특성을 더 구체적이고 신속하게 예측할 수 있다. 이춘길 교수는 “뇌영상 자료가 프로파일 형태로 저장·활용된다면 기존의 신상 정보 유출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대두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탈린, 프로작 등 인지, 정서 기능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향정신성약물의 사용도 신경윤리학의 또다른 주요 쟁점이다. 이런 약물 사용이 비정상적 뇌를 ‘치료’하기 위해서인지 정상적 뇌를 ‘향상’시키기 위한 것인지 여부를 분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약물 사용 여부를 개인의 주체적 판단에 맡길 경우 경쟁 구도에 떠밀려 정신 능력을 증진시키려는 목적으로 약물을 복용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ADHD 병증이 아닌 정상 아동에게도 학습 능력 향상을 위해 리탈린 복용을 권해 논란이 됐다. 또 이춘길 교수는 “보조 약물 등 신경과학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불균등하게 주어진다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픽: 손혜영 기자 rewjie@snu.kr

윤리학의 신경과학: 전통적 철학문제 재조명

‘신경과학의 윤리학’이 뇌과학기술 적용의 윤리적 문제를 다룬다면 ‘윤리학의 신경과학’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결정론 등 전통적으로 철학의 영역에 속했던 문제에 뇌신경과학을 접목해 재조명한다. 뇌신경과학에서는 신경세포의 작용과 마음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즉 인간의 행위는 신경세포의 물리적 배치와 화학적 신호전달 과정에 따라 인과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경윤리학계는 사고와 행동에 신경세포의 작용이 기초적임은 인정하지만 최종적인 행동 결정에서 자유의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뒀다. 신경인문학회 장대익 교수(자유전공학부)는 “신경과학과 마음이 어느 정도 밀접한가를 보는 관점엔 여러 가지가 있다”면서 “뇌의 최종적인 판단은 여러 신경세포에서 발생한 전기화학적 반응이 통합되면서 이뤄지기 때문에 무작위성, 즉 자유의지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뇌과학계 석학 마이클 가자니가 역시 『윤리적 뇌』에서 자유의지 존재 여부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그가 인용한 벤자민 리벳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질적인 행동과 신경이 뇌에서 근육까지 전달되는 사이에 100ms의 시간차가 있다. 그는 100ms 동안 뇌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을 자유’를 발휘할 수 있다며 뇌의 작동 상태만으로는 인간의 자아와 도덕성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유의지와 결정론은 철학적 논쟁에 그치지 않고 법적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 만약 인간의 행동이 지금까지 밝혀진 뇌의 생리적 작용에 의한 자동적 반응이라면 범죄자에게 범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묻기 힘들다. 특히 미국의 신경윤리학자 월터 글래넌은 사이코패스가 도덕적 능력을 관장하는 뇌 기능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정신이상자와 같은 법적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조은경 교수(한림대 심리학과)는 사이코패스의 신경병리학적 기제에 대한 논문에서 사이코패스 환자는 정서적 자극의 식별을 관장하는 전전두엽 피질의 활성이 낮아 공격성이 높아지고 혐오 자극에 대한 반응이 정상보다 낮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이에 대해 “사이코패스의 반사회적, 충동적 특징들이 전두엽 기능 결함으로 설명될 수 있다”며 사이코패스 환자의 법적 책임 정도에 대한 논란을 제시했다.

신경윤리학의 대상은 단순히 학술적 담론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도덕적 판단, 나아가 사회 제도, 법철학과도 직결되는 문제를 포괄한다. 장대익 교수는 “복제양 돌리가 등장했을 때 복제 인간에 대한 윤리적 접근의 움직임이 활발했듯 뇌과학 시대에는 그에 걸맞는 윤리적 성찰이 필수적이다”고 말한다. 뇌신경과학이 불러올 다양한 문제에 대한 신경윤리학적 담론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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