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 한국 미술사학의 인문학적 성찰

서구 미술사 방법론에서 출발해 발전해온 한국 미술사
전통 예술 범주에서 탈피해 여타 인문학과의 접점 통해 외연 확장

1960년 고고미술동호회 창립으로 첫발을 내디딘 한국미술사학이 올해로 50돌을 맞았다. 학계에서는 50년간 축적된 한국미술사학의 성과를 회고하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려불화대전’ 전시회를 21일(일)까지 개최하며, 지난 1일부터 닷새 동안 한국미술사의 원로 연구자들이 학문적 성과를 대중에게 강의하는 ‘다시 찾는 명강의 시리즈’가 여러 대학에서 진행됐다. 지난달 2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미술사학회 주최로 열린 ‘한국 미술사학의 인문학적 성찰’ 학술대회 역시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날 연구자들은 인문학으로서 미술사학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다른 인문학 분야 연구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 한국전통문화학교 제공


한국미술사학계는 미술품의 시각적·조형적 특성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근대적 서구 미술사 방법론을 도입하며 시작됐다. 서구 미술사학은 초기 미술작품의 물리적 특성을 분석하는 데 중점을 뒀으나, 이후 그림의 상징성 파악에 초점을 두는 도상학적(iconographic) 접근 방식이 나타났다. 현대에 와서는 여러 인문·사회과학의 연구 성과와 융합되는 등 방법론의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학: 반성과 모색’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이주형 교수(고고미술사학과)는 “미술사학은 1980년대부터 기존의 도상학적 접근에서 탈피해 하나의 ‘시각문화(visual culture)’ 연구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근대적 미술사학의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온 국내 학계가 미술사학의 인문학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고민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주형 교수는 “풍부한 인문학적 외연을 지닌 미술사학 연구가 유물 중심의 세부적 특징 연구라는 좁은 틀 안에서 자족해 왔다”며 “따라서 연구자들이 지나치게 미시적 관점에 매몰된 나머지 현대 인문학의 다양한 흐름과 변화에 대해 어두웠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연구자들은 역사학, 종교학 등 여타 인문학과 미술사학의 접점을 찾고자 했다. 김일권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예술학부)는 ‘고구려 벽화의 선(仙)과 하늘의 상상력 실재’라는 주제로 종교학과 미술사학의 융합 가능성을 모색했다. 도교의 신선 사상이 반영된 덕흥리고분의 비선상(飛仙象)을 시각자료로 제시한 그는 “화면의 중심부에 자리한 샛별과 비선상을 통해 고구려 벽화의 천공(天空)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구려인이 벽화에 새긴 여러 천문 표상(表象)의 변화 양상은 곧 당시 사람들의 천문관·세계관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에  김일권 교수는 “사상사 연구에서 미술사적 표상 연구가 지니는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림: 김일권,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2008, 사계절)

‘미술사의 과제와 역사학’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남동신 교수(국사학과)에 따르면 미술사학과 역사학의 통섭으로 보다 깊이 있는 역사적 이해를 달성할 수 있다. 그는 “역사학은 문자자료에 주로 의존하는 반면 미술사학의 분석대상은 시각자료”라며 “시각자료의 비교 검토를 통해 문자자료의 오류를 밝혀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이차돈의 순교를 기록한 문자자료 ‘백률사석당기’(818년)에서 이차돈은 손이 뒤로 묶인 채 관을 벗고 있는 ‘죄인의 신분’으로 기술되지만, 비석에 새겨진 조각을 보면 이차돈은 관을 착용하고 손을 앞으로 겹쳐 모으고 있어 죄인이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남 교수는 “문자자료보다 더 이차돈의 순교 장면을 미화한 시각자료를 통해 신라불교사에서 승려들이 지니고 있었던 권위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통섭이 화두가 된 현대 사회에 미술사학의 연구 방식과 대상도 전통적 범주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이 눈길을 끌었다. ‘새로운 방법의 모색, 한국미술사학의 과제’라는 주제로 발표한 홍선표 교수(이화여대 미술사학과)는 “미술사학은 전통 미술만을 다루지 말고 기호학, 해석학, 인지과학을 폭넓게 수용해 미술사 연구의 영역을 확장하고 연구 방법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존에 시·서·화로 나눠 파악했던 문인화도 융합 기호학의 관점에서 하나의 텍스트로 해석할 수 있으며, 문양이나 장식의 패턴이 반복되는 미술작품은 프랙탈의 구조로 분석이 가능하다”며 기호학과 미술사학의 접목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학술대회에서는 학계가 나아가야할 방향과 지나온 길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원로연구자로서 학술대회에 참석한 안휘준 명예교수(고고미술사학과)는 “새로운 방법론 정립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이것을 실현할 구체적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동신 교수는 “과거 일본식 미술사학 용어를 개정해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과거에 대한 성찰을 강조했다. 학술대회가 끝난 후 한국미술사학회 회장 최공호 교수(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는 “이번 학술대회로 선배, 동료, 후배 등 다양한 세대의 연구자들이 모여 허심탄회하게 국내 미술사학계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논의할 수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처럼 한국미술사학은 더 넓어진 인문학적 외연과 참신한 방법론을 통해 인문학의 꽃으로 자리잡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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