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는 정통회화에 비해 묘사의 세련미는 떨어지지만 익살스럽고 소박한 형태와 대담하고도 파격적인 구성, 색채의 측면에서 오히려 정통회화보다 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고 평가받는다. 오늘날에도 ‘정통’ 미술은 아니지만 미술계의 변방에서 나름의 가치를 펼쳐가는 이들이 있다. 삼각지 화랑가의 ‘이발소 미술’, 길거리 화가들의 초상화 등이 그러하다. 이들에겐 옛날 민화의 친근함과 소박함이 깃들어 있다. 미술계 변방, 생동감 넘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삽화: 한혜영 기자 sweetdreamzz@snu.kr

작가정신으로 승부한다, 삼각지 화랑가의 ‘이발소 그림’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사랑을 아쉬워하며 눈물짓는 사내의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배호의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로 유명한 용산구 삼각지는 수많은 화랑과 액자상이 모여 있는 화가거리로도 유명하다. 일요일 오후 찾아간 삼각지역 3번 출구 앞 삼각지 화랑가에는 주말의 고요함과 중견화가의 차분함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휴일에 열린 화랑을 용케 찾았네?” 웃으며 화랑의 문을 연 김수경 작가는 삼각지에서 그림을 그린 지 어언 30년이 돼가는 삼각지의 터줏대감이다. 그가 들려주는 삼각지의 역사는 용산에 미군부대가 들어오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군들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생긴 곳이 이 동네”라며 그는 운을 뗐다. 그가 삼각지에 오기 전에는 2백명 정도의 화가가 수출화를 그리는 미술 공장에 있었다. 당시 미술공장들은 주로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한 카우보이의 모습이나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고즈넉한 마을 풍경 등 일명 ‘이발소 그림’을 대량생산해 냈다. 화랑을 차리며 삼각지에 자리잡게 됐다는 그는 “상당수가 직업을 바꾸고 떠나버린 지금, 삼각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다 이곳에서 살아남은 질긴 사람들”이라며 웃어 보인다.

삼각지 화랑가에서 ‘열린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김수영 작가는 “모두 내 창작품”이라며 화랑을 가득 채운 그림들을 자랑스레 가리킨다. 황소를 모티브로 한 독특한 작품들과 반추상 계열의 환상성을 부각한 작품들이 겹겹이 쌓여 그만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독특한 그의 작품을 보며 삼각지 미술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묻자 그는 “미술을 대중화하며 미술시장의 관객층을 넓히는 ‘개척자’의 역할을 해 온 삼각지 미술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는 “삼각지 미술처럼 대중적인 그림을 예술성이 없다”며 “고급미술이네 저급미술이네 구분하는 건 참 우스운 일”이라며 주류 미술계의 폐쇄성을 비판했다.

그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의 ‘박 갤러리’에서는 이제 막 화랑 문을 연 박명복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또한 초창기부터 삼각지 거리를 지켜온 40년 경력의 노화백이다. 그림을 시작한 계기를 묻자 “그림이 좋아서 시작했지. 미술대학도 못 나왔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열정 하나로 그림을 그려왔다”고 답하는 박명복씨. 불그스름한 페인트를 그림 위에 척척 발라내며 말을 잇는 그의 주변에는 활짝 핀 꽃 그림 수십 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 개인전과 공모전을 자주 열고 있다는 그는 “삼각지가 상업화만 그린다는 시선이 있는데 사실 요즘에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자기만의 색을 추구하는 화랑들이 많다”며 “삼각지의 그림이 단지 상업적인 색만 띤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휴일에도 쉼 없이 그리고 묵묵히 작품 활동에 집중하는 그들에게선 예술성 논란이란 그늘 대신 고요한 삼각지 화랑거리의 질긴 예술혼만이 살아있었다.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길거리 화가가 그린 초상화

지역 축제나 도심 속 거리를 걷다보면 어김없이 만날 수 있는 이들이 있다. 붓이나 색연필, 펜에서 파스텔까지, 다양한 도구로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내는 길거리 화가들이다.

길거리 화가를 찾기 위해 첫 번째로 찾은 곳은 대학로. 혜화역 2번 출구 뒤편에서 캐리커처를 그리는 안보미 작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작업을 막 시작하려는 듯한 그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부탁하자 그는 흔쾌히 인터뷰를 허락했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익숙한 듯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을 이어간 그는 혜화에서 그림을 그린 지 3년차로 원래는 서양화를 전공했다고 말한다. “너무 추상적이거나 이념적인 그림은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서양화를 그만뒀다”는 그는 실용회화 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캐리커처를 그리는 일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길거리 미술의 가장 큰 매력은 직접 사람들과 부대끼며 그림을 그리는 것”이이라고 말하는 안보미씨. 그는 “길거리 화가는 시민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며 미술을 전달하는 ‘예술의 전달자’와도 같다”며 자부심을 보였다.


한편 안씨는 “일반 대중들 역시 예술에 대한 욕구가 있는데 소위 주류 미술은 좀처럼 친숙해지기 어려운 대상인 것 같다”며 “대중미술은 문화적 욕구가 있는 시민에게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인터뷰 도중 등산복 차림의 부부가 들어와 캐리커처를 부탁하자 특유의 입담으로 그림을 그리는 내내 손님들의 웃음이 끊이질 않게 만든다. 그는 그림 그리는 시간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었다.

젊음과 예술이 숨 쉬는 홍대거리는 길거리 예술가들의 천국이다. 홍익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홍대 놀이터’가 특히 그러하다. 일요일 오후 홍대 놀이터, 유난히도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묵묵히 펜을 놀리는 ‘어덜키드’ 작가가 있었다. 얇은 검정색 펜으로 그려낸 목이 굵고 귀여운 그의 캐리커처에서는 그만의 독특함이 묻어난다. 한 장에 1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캐리커처를 그리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작가는 쉬지도 못하고 그림만 그리길 5시간째란다. 잠깐 맞이한 쉬는 시간, 인터뷰를 권하자 그는 힘든 기색 없이 웃음을 짓는다. “원래는 애니메이션이랑 일러스트를 많이 그린다”는 그는 사실 길거리에서 캐리커처를 그리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떨리진 않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는 “집에서 혼자 작업을 하면 항상 아는 사람만 내 작품을 접하게 된다”며 “이렇게 길거리에 나와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내 작품을 평가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주류 미술계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그이지만 길거리 미술을 하는 데 거리낌이나 부끄러움은 전혀 없다는 그는 “길거리에 있다고 해서 작가정신이 없고 주류라고 해서 굳이 예술성을 갖는 것도 아니다”라며 “작품의 예술성은 그 작품을 어디서 만드냐가 아닌 작가의 작가정신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며 나름의 견해를 이야기했다. 그는 오히려 길거리 미술이 조명 받는 미래를 그려 본다고 한다. “독립영화의 경우도 비주류라 불렸으나 요즘엔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며 조만간 길거리 미술과 일명 ‘주류예술’간의 경계가 무너질 것이라 주장했다.

길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던 길거리 화가들의 넘치는 열정. 길거리라는 공간은 그들이 예술혼을 펼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은 그들에게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벽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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