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예술, 지평을 넓히다 (上)

음악에서 시작된 크로스오버 열풍이 최근 예술 전반에까지 퍼져가고 있다. 이에 사진과 조각, 과학과 예술, 고대유물과 현대미술과 같이 경계가 뚜렷하던 장르 간의 크로스오버 역시 시도되고 있으며 예술은 그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이처럼 장르 간의 경계를 허물고 소통을 꾀해온 예술의 다양한 시도들을 조망해보자.

사진과 조각, 서로를 입다

사진이 2차원의 필름 위에 펼쳐지는 평면의 예술이라면 조각은 3차원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입체의 예술이다. 그러나 사진이 3차원의 피사체를 평면에 끌어온 것이라는 점과 조각이 동굴벽화와 같은 평면 예술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사진과 조각 모두 평면과 입체의 긴장 위에 선 예술임을 알 수 있다. 두 영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 긴장관계를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시도들이 있다. 조각가 권오상씨와 사진작가 고명근씨가 시도한 ‘사진조각’이 바로 그것이다.

바지주머니에 손을 꼽고 먼 곳을 응시하는 「액션 샘플러」(2004)(왼쪽 위)라는 이름의 건장한 남자. 얼굴이 4개인 앞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여느 실물 크기의 조각과 다를 바가 없다. 조각가 권오상씨의 이 작품은 대상을 퍼즐조각처럼 분리해 찍은 사진을 스티로폼 조각 위에 붙여 만든 것이다. 대상의 형태는 3차원으로 유지하되 실제 모습은 2차원의 사진으로 재구성한 작품은 일명 ‘데오드란트 타입’이라 이름 붙여졌다. 이는 체취를 감추고 다른 향기가 나게 하는 화장품의 상표에서 빗댄 것이다.

권오상씨가 조각을 중심으로 사진과의 만남을 시도했다면 고명근씨는 사진에 무게를 두고 조각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그는 투명한 OHP 필름에 여러 사진을 인화한 후 그 필름들로 입체의 구조물을 제작했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푸른 바다와 건물 사진을 엮은 「Building-62」(2010)(왼쪽 아래)에서는 움직일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사진 덕에 작품으로 직접 걸어가는 듯한 착각을 준다. 대상을 고정된 단면로만 기억하는 현시대를 비판한 작가의 의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조각의 무거움과 사진의 단편적 속성을 극복하려는 두 작가의 고민은 사진과 조각의 만남으로 해결 지점을 찾는다. 서로 보완해주며 새로운 예술의 길을 여는 사진과 조각의 동행이 기대된다.

예술, 과학을 향해 손짓하다

예술을 의미하는 단어 ‘Art’는 오래 전 예술과 과학 모두를 이르는 말이었다. 감성과 이성이라는 이분법이 등장하며 분화된 예술과 과학은 감성과 이성의 경계가 사라지는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다시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엑스레이로 예술을 구현하는 ‘엑스레이 아트’와 스피커 장치로 소리를 공간에 담는 ‘사운드 아트’가 그것이다.

엑스레이 광선으로 피사체를 포착하는 엑스레이 아트는 피사체의 내면을 자유자재로 그려낸다. 작품 「한여름밤의 꿈 2010 A」(2010)(오른쪽 아래)에서 검은 필름 위를 훑고 간 엑스레이 광선은 꽃들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이색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이 작품은 엑스레이 아티스트 정태섭 교수(연세대 영상의학과)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촬영 후 후속작업을 통해 흑백의 피사체는 다양한 색감을 지닌 작품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사물의 외면에만 집착하는 기존의 사고를 탈피하기 위해 시도된 엑스레이 아트. 엑스레이는 이 새로운 예술의 흐름을 통해 의료용 기기라는 딱딱한 인상을 벗고 예술을 구현하는 새로운 장치로 변모했다.

한편 과학적 장치로 소리를 시각화 하는 시도 역시 존재한다. 예술에서 시각과 청각이 각각 동원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관객은 두 감각이 경계를 넘나드는 이 예술을 낯설게 느낀다. 호주 출신 작가 제프 로빈슨의 「한국, 서울, 삼청공원, 전망대와 서울 성곽의 접점」(2009)은 다양한 공간에서 소리를 녹음하고 발원지와 녹음지점의 거리를 계산해 스피커를 이와 같은 비율로 전시공간에 설치한 작품이다. 전시공간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익숙했던 서울의 공간들을 낯설게 시각화한다.

예술과 과학의 조우로 발현된 새로운 예술의 흐름. 그 행보는 일상에, 대중의 인식에 여전히 남아있는 예술과 과학의 이분법을 허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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