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서평]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유홍림 교수

정치외교학부
『전쟁과 정의』(2009) 역
우리는 얼마나 정의로운 사회에 살고 있는가? 정의의 기준에 대한 합의는 가능한가? 정의에 대한 관심과 열망은 공동체적 삶의 역사를 이끌어온 원동력이다. 정의의 문제는 왜 중요한가? 정의 관념은 정치와 법질서의 토대로서 정치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법과 정책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삶의 상징적 기초다. 따라서 정의에 대한 공통된 이해에 의해 사회통합이 가능해지며, 기대와 상황에 부합하는 정의 관념의 수립에 의해 정치적 안정이 확보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이 정의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불안정과 내란의 원인이 된다. 정치 위기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정의 관념의 와해와 깊은 관계를 갖는다. 따라서 정의가 사라질수록 정의에 대한 관심과 요구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정의는 복합적인 관념, 다양한 가치들의 분배와 직결

정의를 주제로 한 정치철학 수업을 담은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치철학의 실천성에 대한 샌델 교수의 관심을 보여준다. 소크라테스를 연상시키는 질의토론식 수업,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현실 속의 다양한 논쟁사례들에 대한 논리적 분석은 토론과 논쟁의 활성화를 통한 ‘철인-시민(philosopher-citizen)’의 형성을 목적으로 한다. 샌델 교수는 자유주의, 공리주의, 공화주의 등을 공공철학의 관점에서 다룬다. 공공철학은 철학적 논의를 사회 운영의 원리와 결합시키려는 노력이며, 다양한 가치들의 분배와 직결되는 정의 관념은 공공철학의 핵심 주제다.

정의는 복합적인 관념이다. 자유, 평등, 행복, 목적, 미덕 등과 연관될 수밖에 없는 정의 관념은 공적 토론의 중심에 위치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에 대한 구분으로부터 출발한다. 행복, 자유, 미덕 각각을 기준으로 정의의 문제에 접근하는 사상체계들로서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 칸트의 도덕철학, 롤스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 등이 차례로 소개된다. 지루할 수도 있는 철학적 설명은 흥미로운 사례들에 대한 논리적 분석들이 짜임새 있게 얽혀 있다. 이 책의 두드러진 매력이다.

샌델은 공리주의·자유주의 아닌 ‘공동선의 정치’ 주장

샌델 교수의 정의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과 논의는 “정의와 공동선”을 결합하는 “공동선의 정치” 구상으로 귀결된다. 그는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정의 담론의 한계를 적시한다. 공리주의는 정의를 원칙이 아닌 계산의 문제로 환원시킬 뿐만 아니라, 가치를 획일화하고 가치들의 질적 차이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또 그는 자유에 기초한 정의 이론들은 개인의 자율적 선택과 권리를 절대화하면서, 목적의 도덕적 가치, 삶의 의미와 중요성을 중립의 명분아래 정치 영역에서 배제한다고 비판한다. 샌델 교수는 이러한 “회피의 정치”를 넘어 “공동선의 정치”를 추구한다. 비판이 고조될수록 공동선의 정치 구상은 강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시민의 윤리적 역량을 중심축으로 삼는 공동선의 정치는 물질적 이해와 개인의 권리 담론에 경도된 현대 정치의 천박함과 공허함을 비판하면서 도덕적 열망의 정치를 지향한다. 시민의식, 희생, 봉사,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한 인식, 불평등의 해소를 통한 연대 구축, 도덕에 기초하는 정치 등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결론에 따르면 철학과 정치의 화려한 재결합을 보는 듯하다.

현대 정치에 대한 불만과 함께 공화주의 또는 공동체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정치적 소외와 무력감, 시민윤리의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참여의 활성화와 시민덕성의 함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샌델 교수의 정치 구상은 오랜 역사를 갖는 공화주의 전통을 계승한다. 공화주의가 지향하는 공화국은 정의와 공동선을 기반으로 주권자인 시민들이 만든 정치공동체로서 시민덕성, 즉 시민의 윤리적 자질과 역량에 기초한다.

정치가 도덕 문제 해결의 장 되면 사회통합의 위기 이어질 수도

공화주의 전통의 현대화를 추구하는 “공동선의 정치”는 샌델 교수가 그의 다른 저서 『민주주의의 불만』에서 인정하듯이 “성공의 보장이 없는 위험한 정치”일 수 있다. 정의와 공동선을 결합시켜 도덕 담론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경우 의견 갈등은 증폭될 것이다. 물론 가치와 그 의미를 둘러싼 공적 논쟁이 결국 정의로운 사회 형성에 기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적 영역에서의 도덕 논쟁이 낳을 결과에 대한 지나친 낙관은 위험하다. 정치영역이 도덕 문제 해결의 장이 되어 시민의 가치관 형성에 개입하게 된다면, 정치-도덕 논쟁이 사회통합의 위기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시민들이 참여하는 토론이 어느 정도 합의를 지향한다면, 이성적 합의를 위한 조건과 절차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즉 샌델 교수가 비판하는 중립성과 대표성의 절차, 추상화된 정의 원리가 다시 필요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정의에 대한 상이한 이해 방식들은 순환적으로 연계된다. 따라서 다른 방식들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어느 한 방식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방식들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의에 대한 샌델 교수의 ‘선택적 접근’과 대비될 수 있는 ‘정치적 접근’ 방식은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포괄하는 다초점적이고 맥락적이며 전체를 둘러보는 관점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정치세계는 자유, 평등, 복지, 유대, 개인성, 집단정체성, 민주적 정당성, 시민윤리, 리더십 등 다양하고 때로는 상충하는 열망과 가치들을 내포한다. 문제는 이러한 가치들의 완전한 조화와 실현을 보장하는 하나의 해결책은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정치는 상충하는 가치와 요구들 간의 적절한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의 담론은 이러한 ‘균형의 정치’에 필요한 사고력과 판단력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돼야 한다.

한가지 정의 담론을 선택하기보다 영역별 고유의 자율성·협력 보장해야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이창신 옮김|김영사|404쪽|1만5천원
샌델 교수의 열망과는 달리 현대 다원사회에서의 정의 관념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자유와 평등, 정치와 경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분배와 인정 등의 제도와 관심들이 분화하고 교류하는 양상은 복잡하다.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 각각의 영역은 고유한 정의 관념과 원칙을 자율적으로 형성해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의 역할은 영역별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상호협력을 위한 통합을 유지해가는 것이다. 정치에서의 정의는 부분적 요소들 간의 ‘조화’의 문제이다. 샌델 교수의 정의 담론에는 부분적인 ‘영역별 정의’와 전체포괄적인 ‘정치적 정의’의 구분이 불분명하다. 어떤 시공간의 맥락에서 어떤 정의 원칙이 타당한지 알기 위해서는 『정의란 무엇인가』식의 기준 선택에 대한 논쟁을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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