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스 비벤디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 한상석 옮김 |
후마니타스 | 192쪽 | 1만원  

북극의 툰드라 지역에서 가옥을 지으려면 공사 전 암반까지 기둥을 박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얼어있던 땅이 봄에 해빙되면 지반이 내려앉아 건물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명물이 된 독특한 공사 방식은 ‘유동적인’ 땅에 대한 불안감으로 시작된 셈이다. 그런데 최근 출간된 『모두스 비벤디』의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이라면 이 지역 주민뿐 아니라 현대인 모두가 실은 ‘유동하는’ 땅 위에서 불안한 삶을 이어간다고 말할 것이다.

사회학자인 저자 바우만은 ‘유동하는 근대(liquid modernity)’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학계에서 고유한 입지를 구축해왔다. 그가 지난 2000년부터 선보인 ‘유동하는 근대 시리즈’는 현대 사회의 불안정한 삶의 양식과 그로 인한 현대인들의 불안과 공포를 설명해왔다. 『액체 근대』 『액체적 사랑』 『유동하는 공포』 등의 뒤를 이어 『모두스 비벤디』는 이런 저작들의 연장선상에서 ‘견고한(solid)’ 기반이 붕괴된 ‘유동적’인 근대의 비극을 묘사한다.

바우만은 현대와 근대를 구분하는 ‘탈근대’적 시각을 거부하고 현대를 근대적 삶의 조건이 붕괴된 또다른 근대, 즉 ‘유동하는 근대’로 새롭게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근대에는 주권을 가진 국민국가가 사회보장제도 등으로 개인의 삶을 보호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힘을 얻으면서 이들 국민국가의 정치경제 권력은 점점 전지구적 공간으로 이양된다. 여기서 결과적으로 개인은 더 이상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유동적인’ 현실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견고한’ 보호막이 사라지면 개인은 자신의 실패나 패배에 대한 대가를 혼자 감당해야 한다. 실패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을 점점 더 경쟁에 집착하도록 만들 뿐이다. 그러나 경쟁에서 승리한다 해도 근본적으로 공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경쟁에서 조금 앞선 개인도 유동적인 사회에서는 언제든 ‘폐기처분될’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번 형성된 공포가 사람들의 이상 행동을 유발해 다시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며 끊임없이 재생, 확산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혼자만의 생존과 성공을 뜻하는 신자유주의식 유토피아는 서로를 끊임없이 불신하고 공격하는 ‘지옥’일 뿐이다.

저자는 이러한 ‘지옥’이 경쟁에서 밀려난 개인들을 ‘인간쓰레기(wasted human)’으로 만든다며 날을 세운다. 약자를 수탈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에서는 정치 경제적 난민처럼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변두리로 밀려나 쓰레기처럼 버려진다. 이미 힘을 잃은 개별 국가는 이들을 보호하고 자립시키려는 근본적 해결책보다 ‘게토’나 ‘난민수용소’ 등의 격리 시설을 만들고 이들의 존재를 숨기는 미봉책만 내놓기에 급급하다. 여기에 갇힌 ‘인간쓰레기’들은 외부의 편견 속에서 서서히 잊혀지는 것이다.

책의 원제는 『유동하는 시간』으로, 국내에 출간된 제목인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는 분쟁 당사국들이 정식 협정을 맺기 전 잠정적으로 체결하는 임시 협정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유동적인 근대 역시 이방인과 원주민, 엘리트와 빈민 간 모순을 봉합하고 ‘불안한 공존’을 유지하는 ‘모두스 비벤디’ 상태에 불과하다. 대다수 사람들은 여기에 ‘순응’하며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가 지옥임을 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지옥도(地獄圖)를 담담히 전개하며 분명히 말한다.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포의 근원을 인식하고 잠정적 협정을 깰 용기가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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