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김희정, 안세민 옮김|부키|289쪽|1만4천8백원
아프리카가 저개발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구성원들이 게으르고 방탕하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에 비해 생산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당연히 더 높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 이처럼 너무나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는 신자유주의의 주장들이 모두 사실일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그것들이 허구임을 밝히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진실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저자 장하준 교수(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비주류 경제학의 입장에서 조목조목 반박하는 일련의 저서들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국내에서도 전작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신자유주의의 제국주의적 본성을 폭로해 주목 받은 바 있다. 이번 책은 자본주의의 현실을 대중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저명한 경제학자들조차 갖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23가지의 잘못된 통념을 풍부한 역사적 사례를 들며 반박한다.

저자는 먼저 규제가 없는 자유 시장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못 박는다.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이들은 시장을 수요와 공급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겨둬야 경제의 효율성이 극대화된다고 믿기에 정부에 의한 규제와 개입을 반대한다. 그러나 자유 시장에도 노동법과 이민법 등 이제는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규제 법안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 규제들도 도입 당시에는 시장의 자율성을 제한한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따라서 저자는 자유 시장 보호를 내세우며 규제를 반대하는 행위는 학문적 주장이 아니라 결국 현 상태의 부당함에 눈감고 그를 고수하자는 정치적 입장 표명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자유 시장이라는 거대한 환상을 시야에서 걷어낸 저자는 자유 시장에 감춰진 또 다른 허구들을 폭로한다. “탈산업사회의 신화”는 금융업 등 서비스업이 사회의 중심이 된다는 믿음이다. 제조업 등 전통적 생산업은 ‘세계의 공장’인 중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 맡겨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슬란드 등 새로이 금융허브로 부상했던 국가들은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 듯 했다. 그러나 서비스 사업이라는 것은 2차 산업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이를 경시한 탈산업사회는 바닷가의 모래성처럼 불안한 상태에 머문다. 자유 시장의 비호 아래 금융업은 경제학자들조차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게 성장했다. 저자는 그 결과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탈산업사회 신화의 허구성이 탄로 났다고 진단한다.

오늘날 경제적 재앙을 불러온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의 이름 아래 20년이 넘도록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일반적으로 자유 시장을 역사적 발전의 필연적 결과로 여기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회 경제적 제반 시스템을 바꿔서 자본주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결국 문제의 원인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회 체제가 바뀌는 것을 막으려 애쓰는 CEO·주주 등 사회 지배층, 부당한 현실을 직시하거나 이를 바꾸려 노력하지 않는 일반 대중의 무관심인 것이다.

저자가 자본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유 시장 자본주의라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맹목적으로 고수하는 자세를 경계하고, 각 국가의 특수성에 맞는 효율적 대안체제를 함께 모색할 것을ㄱ 제안한다. 더 이상 경제학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놓고 현실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저자의 주장처럼, 우리는 안락한 무지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제 불편해질 때가 왔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 김희정, 안세민 옮김 | 부키 |
289쪽 | 1만4천8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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