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적 대우를 바라는 노동자의
‘발화의 권리’마저 빼앗아간 사회
노사갈등을 숨기기 급급한 정부는
근본적인 노동정책에 대해 고민해야

고은혜 문화부장
지난 2월 국회에서 대한민국헌정회 육성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법 개정으로 전·현직 국회의원들은 평생 월 120만원씩의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 육성법의 적용을 받는 국회의원들 중에는 일년간 단 26일밖에 활동하지 않았던 이도 있었다. 26일을 일하고 평생 월 120만원을 받게 된 이 전직의원의 사례는 지난 26개월 간 일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달라고 외쳐온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26개월 간 힘겨운 싸움을 이어온 그들은 바로 현대·기아자동차 하청업체인 동희오토의 노동자들이다. 2008년 사측으로부터 일방적 계약해지를 당한 뒤 시작된 이들의 싸움은 얼마 전 노사 합의가 타결되기 직전까지도 이어져 왔다. 이 지난했던 싸움을 통해 그들이 얻고자 했던 것은 ‘120만원’ 이상의 임금도, ‘평생 받을 연금’도 아닌 그저 노동자들에 대한 합당한 대우와 인간적 처우였을 뿐이다. 지난 6년간 사측과 싸워 온 기륭전자 금속노조 지부의 노동자들 역시 그 긴 시간 동안 끈질기게 요구했던 것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현실적 인정과 노동자에 대한 인간적 대우였다.

하루라도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싶다던 그들에게 정부는 합법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노조 결성과 집회를 금지해 왔다. 불법화된 그들의 모임과 목소리를 정부는 공권력까지 투입해 가며 억압해 왔다. 국회의원들이 ‘법’이라는 합법적 수단으로 ‘일할 수 있는 권리’도 아닌 ‘일에 대한 권리’를 확보해가고 있는 사이 그들은 이 권리를 입 밖으로 내뱉을 권리조차 박탈당한 것이다.

발화의 권리마저 빼앗긴 그들에게 남아있는 수단은 많지 않았다. 지난달 26일 기륭전자 앞 농성장을 지키던 한 노동자 시인은 포클레인 위에서 농성을 벌이다 떨어져 발목 뼈가 으스러졌다. 같은 달 30일 구미 KEC의 노동자는 경찰의 강압적 연행에 결국 분신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소식은 자극적이고 선정적 어구들로 대중들에게 전달될 뿐이었다. 그리고 이 어구들 속에서 수단을 빼앗긴 노동자들의 상황은 어디에도 설명되지 않았다. 극단적이고 폭력적이라 비화되기까지 하는 이들에게 결국 남은 것은 그렇게라도 찾고자 했던 권리가 아닌 으스러져 쓸 수 없게 된 발목 뼈와 온 몸을 뒤덮은 검은 화상 자국 뿐이었다.

기륭전자와 동희오토는 최근 사측과 노조 간에 협상안을 극적으로 타결했다. 노동자들은 이제 그들의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노동계 역시도 긴 투쟁을 벌여온 노동자들의 원직 복직을 반기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들은 남아있다. 기륭전자와 같이 1천일을 투쟁해 온 재능교육 노조와 구미 KEC 노조 등 여러 사업장들의 현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과 간접·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방안들은 단기적 협상안들에 밀려 제시되지 않고 있다. 

 “너희가 다가오면/ 나는 손을 놓는다/ 손을 놓는 건 나지만/ 나를 죽이는 건 너희들이다” 기륭전자 농성장 앞 포클레인 위에서 추락한 노동자 시인이 경찰의 과도한 진압에 맞서 외친 말이다. 갑작스런 노사 협상과 타결에 대해 일각에서는 G20을 앞둔 정부가 중재에 나섰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국격을 강조하는 정부에게 노사갈등 문제는 내비치고 싶지 않은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은 알아야 한다. 그들이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이 노동자 시인과 같이 추락하는 이들에게 날개 따위가 허락되지 않는, 급기야 다리 하나 으스러뜨리고 마는 현실이라는 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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